김재수 영화감독 에세이 "야모 누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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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수 영화감독 에세이 "야모 누부야"
  • 지리산힐링신문
  • 승인 2020.01.18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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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이 지나면 천수답 다랑이 논두렁에 댕기머리 처녀들이 봄나물을 캔다.

 

 

김재수 영화감독

 

늙은 구렁이를 닮은 논두렁에 펑퍼짐한 엉덩이를 살랑거리며 냉이며 달래를 캐는 저 너머로 지게에 가득 솔잎 갈비를 지고 오는 더벅머리 숫총각의 아랫도리는 이미 불끈하다. 벌써 낡은 흑백필림이 되어버린 내 유년의 기억 몇 장이 오늘 문득 생각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영화쟁이라서 그런 걸까. 필림을 60년대 중반으로 되돌려본다.

내 어릴적엔 주변에 유난히 불구자들이 많았다. 그 때는 그 이유를 몰랐지만 6.25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생겨난 현상이라고 했다. 즉 선천적 장애가 아니라 후천적으로 피치 못할 이유로 생긴 장애자인 것이다. 그 중에 내가 지금까지 잊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다.

 

<야모>라는 별명을 가진 여자 거지였는데 한 쪽 다리를 절어 껄며 동냥을 다니는 여자였다. 그 여자는 정말 신통하게도 동네에 무슨 큰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나타났다. 혼인과 초상은 물론 누구 집 제사, 누구 집 환갑 때면 틀림없이 나타났다. 어쩌다가 그 여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동네 아지메들이 괜스레 걱정까지 할 정도였다. 그 여자 <야모>. 나는 그 여자가 나타나면 은근한 마음으로 숨었다. 동네 또레들은 돌을 던지며 놀리고 그랬는데 누구보다 악동이었던 나는 그러지 못했다. 심지어 숫총각 아재들은 <야모>한테 야모야, 오줌 한번 누면 내가 돈 줄게라며 치근거리기 조차했다. 그러나 그 여자<야모>는 그러지 않았다. 말을 하는 걸 보지 못했지만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았고 큰 키에 유난히 맑고 깊은 눈, 오똑 선 콧날, 아미의 눈섶을 가졌던 여자였다.

 

 

 

거지였지만 옷은 늘 단정했다. 군데군데 깁은 흰 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고 다녔는데 동냥을 할 때도 그녀는 예의가 있었고 나름의 법도가 있었다. 대부분의 거지들은 밥과 찬을 한꺼번에 섞어 얻어가는데 그녀는 항상 밥 따로 찬 따로였다. <야모>는 그랬다.

 

 

설이 지나고 초등학교 가입학을 하러 가는 길에 나는 엄마한테 물었다. <야모>에 대해서.엄마는 그러셨다. “야모는 엄마와 함께 밤내(고성에 있는 냇가) 다리 밑에서 움막을 짓고 살고 있는데 육이오 난리통에 경찰관이던 아버지가 빨갱이한테 죽고, 피난길에 미군폭격으로 업고가던 <야모>를 떨어트려 <야모>는 다리병신이 되고 엄마도 반 미쳤는데 배운 사람이라 걸벵이도 깨끗해야 남들 괄시 안 받는다면서 저리 <야모>를 야무지게 키운다 카더라. 밤에는 글도 가르치고.” 그랬다. <야모>는 야무지다고 <야모>였던 것이다.

한 동안 <야모>가 보이지 않았다. 동네 아지메들이 모두들 고성바닥을 떠났다고 수근 거릴 무렵 <야모>는 뜻 모를 미소와 함께 나타났다. 그때 우리 집은 읍내로 이사를 가기로 했고 나는 학교 때문에 내일이면 아버지를 따라 먼저 읍내로 가기로 했던 때다. 그런데 옛날의 <야모>의 모습이 아니었다.

 

옷은 찢어지고 더러웠고 얼굴은 상처딱지가 엉겨 붙어 엉망이었다. 엄마가 <야모>를 집으로 불렀다. 엄마가 누런 돌가리 종이에 서툰 글씨로 물었다. ‘엄마는이었고, <야모>죽었다였다. 엄마가 <야모>를 꼭 껴안아 주었다.

 

 

그리고 물을 데워 정지에서 목욕을 시켜주었다. 할배와 새할매는 걸벵이한테 저런다고 사랑방에서 지청구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엄마는 큰누나의 옷을 방에서 들고 나와 다시 정지로 들어가 <야모>에게 입혀주었다.

 

 

<야모>는 나의 누나로 새롭게 정지에서 나왔다. 대청에서는 막 돌 지난 내 막내 여동생이 아장아장 걸음마를 하고 있었다. <야모>가 동생을 안았다. 낯을 가린 동생은 금새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가 젖을 꺼내 동생에게 물렸다. 동생을 재우고 엄마는 <야모>한테 밥을 차려주었다. <야모>의 그 깊고 큰 눈에서 눈물을 흘렀다. 막 여덟살이었던 내게 또렷하게 남아있는 <야모>의 첫 눈물이었다.

 

 

엄마가 <야모>한테 몇 푼의 돈을 손에 꼭 쥐어주었다. 유난히 긴 우리 집 골목길 끝까지 엄마는 <야모>를 따라 나가 이별을 하였다. 한 쪽 다리를 절며 동구 밖 앙상한 느티나무를 뒤로 하고 <야모>는 그렇게 갔다. 그게 내가 본 <야모>의 마지막이었다.

 

<야모>의 소식을 어른이 되고 들었다. 차라리 듣지 말아서야 했다. 집안 시사가 끝나고 모두 모여 음복을 하던 자리였다. 집 안 아재 누군가가 그 해 겨울에 <야모>가 밤내 다리 밑에서 강간을 당하고 얼어 죽었다고 했다.

뱃속에 애가 있었다고.

 

 

내 유년에 또렷하게 남아있는 <야모>는 딸이 일곱인 우리 집에 또 한 명의 누이였다.

<야모>는 전쟁이 남긴 또 하나의 슬픈 가족사이지만 내게는 시린 사랑에 대한 먹먹한 그믐이다. 우리에게 장애는 현재진행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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