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죽기전에 반드시 가봐야할 여행명소 "중국 복건성 土樓(토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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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죽기전에 반드시 가봐야할 여행명소 "중국 복건성 土樓(토루)"
  • 지리산힐링신문
  • 승인 2024.01.18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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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근
함양거주 산삼농부
김용근 함양거주 산삼농부

나는 함양군 마천면 촉동마을에 사는 촌로(산삼농부)이다. 나이 70 지나 여행의 즐거움에 깊이 빠져들어, 1년에 두 세차례 해외여행을 떠난다.

고독을 좋아한 시인 릴케는 관광객들이나 번잡한 단체 관광을 혐오했다. 비록 릴케의 여행 방식이 체계적이지는 않았으나 당시로서는 그리고 지금으로서도 그만의 새로운 방식이었다. 그는 열정적인 산책가였고 걸어서 구석구석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였다.

산책을 할 때면 항상 메모장을 휴대하였고, 하찮은 것이라도 모든 것을 눈여겨보았으며, 인습적인 시각을 벗어나 모든 것을 다르게 보고 다르게 받아들였다.

그는 유명한 관광 명소로 몰려다니는 관광을 혐오했다. 그는 "진정한 즐거움"을 만날 수 있는 여행을 추천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릴케는 여행에서 남들이 좋다고 또는 유명하다고 하는 것을 무작정 따라갈 것이 아니라 내가 생생하게, 독특하게, 친근하게느낄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보라고 권하고 있다.

시인 릴케가 그랬듯 필자도 조용하고 사뭇 영성적 색채가 짙은 곳을 선호한다. 2023년엔, 몽고 티벳을 다녀왔다. 2023년 한 해가 다가기전에, 배낭을 짊어매고 중국 복건성(福建省)에 다녀왔다.

복건성을 중국말로 푸젠성이라 부른다. 성도는 푸저우시이며 최대도시는 샤먼시다.중국 남동부에 위치하며 북쪽으로 저장성, 서쪽으로 장시성, 남쪽으로 광둥성과 접한다. 굳이 이곳을 택한 이유는, 토루(土樓)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토루는 보통 크게 에워 싼 건축물이다. 사각형이나 원형을 가지며, 매우 두껍고 무게가 나가는 흙벽과 나무 골조로 지지를 하며 2층에서 5층의 높이로 쌓는다. 이 흙건축물은 하나의 문을 가지며, 10cm 정도 두께의 문을 단다. 맨 꼭대기에는 비적을 방어하기 위한 총구를 만들어 두어 방어용의 목적도 가진다.

중국 지도자 등소평이 어릴적 살던 집

토루(土樓)란 무엇인가? 땅은 넓지만 행정과 공권력이 얇게 퍼져 있는 중국 특성상 원주민들과의 갈등을 피하고 계투나 비적, 맹수와 같은 외부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폐쇄적으로 만든 공동주택으로, 현대의 아파트에 비교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건물별로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집성촌과 같은 역할을 하며 'xx()'와 같은 이름을 가진다.

12세기 이래 중국 남부로 이주해 온 객가들에 의해 지어졌으며 20세기에도 건축되었다.

전청루(Zhencheng Lou, 振成樓)1912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2008년 푸젠성 토루(福建省土樓)라는 이름으로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푸젠토루(福建土樓)라고도 불린다. 이 때 모두 46채의 토루가 함께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36개의 토루가 한꺼번에 모여 있는 추계 토루 클러스터(Chuxi Tulou cluster)는 특히 유명하다.

많은 여행평론가들은 중국 복건성 하문(샤이먼) 지역의 토우를 가리켜 죽기전에 반드시 구경해야 할 여행명소라고 한다.

중국 역사서에 따르면 토루는 중국 전국에 수천 개가 존재했으나 소멸되었고 지금은 복건성에만 (50여개의 완전형태) 존재하고 있다. 토루는 중국의 유대인이라고 하는 하카(객가)족에 의해 지어졌다.

하카족들은 북방에서 남쪽으로 이주했던 종족으로서 무척 호전적이고 배타적이었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그들의 성()을 쌓고 외부의 침입을 막았다. 토루 외벽에는 화살이나 총을 발사할 수 있도록 작은 창문이 뚫려있고 벽의 두께는 자그만치 2미터에 달한다.

토루는 일반적으로 3층에서 5층 규모로 지어졌으며 건물의 중앙에는 사당과 우물이 있다. 좁고 낮은 정문이 유일한 출입문인데 출입문을 들어 서면 하늘이 뻥 뚫린 듯한 거대한 중정이 보인다.

객가(하카족)의 토루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고대 중국의 우주관이 반영되어 있으며, 건물의 가운데가 뻥 뚫린 원형의 건물이 들어서 있고, 뻥 뚫린 곳에서는 주로 식량 창고나 주민들이 축제를 여는 공간으로 사용한다.

토루는 항토의 내력벽을 이용하여 만든 규모가 거대한 군체누방의 민가를 특별히 지칭하는 말이다.

외부는 두꺼운 흙벽으로 둘러싸여있고 내부는 목조건물이 있는 혼합구조의 3-5층 집합주택이다.

토루의 벽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황토를 이용한다. 황토에 설탕, 계란, 찹쌀물을 섞어 벽을 더욱더 견고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또 흙 사이사이에 볏짚이나 대나무를 박아서 요즘 건물의 철심 역할을 하게 했다.

예전 사람들의 이러한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나무가 철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았을까?

이렇게 흙을 다져 쌓여진 두께가 2m에 달하는 토루의 벽은 상상할 수 없을만큼 튼튼하다고 한다.

1934년 장제스의 국민당 군대가 벽을 뚫으려 했으나 자그마한 구멍밖에 낼 수 없었던 일화는 유명하다. 또한 1918년에 일어난 지진이 벽에 30센티미터 넓이로 흠을 내놓았지만 세월이 흘러 다시 붙은 사실은 토루가 얼마나 견고한 구조로 지어졌는지 잘 보여준다.

복건성 여행 팸플릿에 토루와 관련 정보가 이렇게 적혀져 있다.

객가는 기존토착세력으로부터 핍박과 천대를 받아온 밑바닥 계층이었다. ”태평천국의 난주동자 홍수전, 중국 혁명의 대부 손문, 싱가포르 리칸유 전 총리, 중국지도자 등소평 등이 객가 출신이다.

조용헌 인문학자는 객가족들의 기질을 이렇게 풀이한다.

객가족들은 한마디로 변방 38 따라지 인생들이었습니다. 태평천국의 난과 아편전쟁의 세부상황에 정통한 역사소설가 진순신은 태평천국의 난 홍수전을 따랐던 추종자들이 바로 객가인이라고 하네요.“

객가인들의 삶은 치열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이곳저곳을 떠돌다 한 곳에 정착, 쓸모없는 황무지를 잘 개간, 쓸만한 땅으로 만들었다. 그러자 토착민들이 이 땅을 빼앗기 위해 쳐들어온다. 객가인들은 피땀 흘려 일군 땅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토루 속에서 전투를 벌인다. 이 전투를 계투(械鬪)라고 한다. ()는 무기를 가리킨다.

토루 우물

북건성 토루 여행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왔다. 내가 살고 있는 촉동마을 정면에 지리산 천왕봉이 보인다.

소설가 이병주는 지리산을 가리켜 계투(械鬪)의 산이라고 불렀다.

가수 안치환은 저리산을 반란의 고향이라고 불렀다.

안치환의 노래를 콧노래로 불러본다.

눈보라 몰아치는 저 산하에/ 떨리는 비명소리는 누구의 원한이랴 죽음의 저산/ 내 사랑아 피끓는 정열을 묻고/ 못다 부른 참 세상은 누구의 원한이랴 침묵의 저 산

지리산을 바라보며 필자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간 저 지리산에 토루 같은 건축물을 하나 세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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