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인 전 군수님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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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인 전 군수님 부탁해요,
  • 지리산힐링신문
  • 승인 2022.02.22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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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사진 -조광환기자

노래는 우리 삶에서 없어서는 안될 요소이다. 노래를 불러보라! 노래는 가장 빠르게 저비용으로 힐링 할 수 있는 지상 최고의 아이템이다. 노래는 3분짜리 인생의 드라마라고 표현하고 싶다. 공자는 노래를 무척이나 좋아해, 수업 도중 제자들에게 노래를 가르쳤다.

공자의 말이다. “노래는 사람들의 흥취를 일으키게 할 수 있고 사물을 올바로 살필 수 있게 한다. 또 사람들과 제대로 어울릴 수 있게 하고 노래를 부르다보면 자연스레이 새 짐승 풀 나무의 이름도 많이 알게 한다.”

한편의 영화 타이타닉처럼 죽음이라는 백척간두 앞에서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며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한다.

 

 

 

내 친구 방랑바우(필명)가 아내를 잃고 거창에 왔다 친구는 수승대를 보며 이문세의 휘파람을 조용히 불렀다 

그대 떠난 여기 노을진 산마루턱엔 아직도 그대 향기가 남아서 이렇 게 서있오 나를 두고 가면 얼마나 멀리 가려고 그렇게 가고 싶어서 나를 졸랐 나 그대여 나의 어린애 그대는 휘파람 휘이히 불며 떠나가 버렸네 그대 여 나의 장미여 사랑하는 그대 내곁을 떠나갈적엔 그래도 섭섭했었나 나를 보며 눈 물흘리다 두손잡고 고개 끄덕여 달라 하기에 그렇게 하기 싫어서 나도 울었네 그대여 나의 어린애 그대는 휘파람 휘이히 불며 떠나가 버렸네 그대 의 나의 장미여

 

거창군 웅양면 출신 kbs 티비 편성국장 이응진 피디는 젊은 시절 이노래를 좋아했습니다

 

소리내지마 우리사랑이 날아가버려
움직이지마 우리사랑이 약해지잖아
얘기하지마 우리사랑을 누가듣잖아
다가오지마 우리사랑이 멀어지잖아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나는 너를 보고 있잖아
그러나 자꾸 눈물이 나서 널 볼수가 없어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우린 아직 이별이 뭔지 몰라

 

 

 

그의 친구 시인 홍영철은 "조타가튼놈 그기 노래가?" 하면서 임주리의 노래를 소개합니다 립스틱 짙게 바르고 

 

 

홍영철시인

내일이면 잊으리 꼭 잊으리
립스틱 짙게 바르고
사랑이란 길지가 않더라
영원하지도 않더라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마는
나팔꽃보다 짧은 사랑아
속절 없는 사랑아

마지막 선물 잊어 주리라
립스틱 짙게 바르고
별이 지고 이 밤도 가고 나면
내 정녕 당신을 잊어 주리라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마는
나팔꽃보다 짧은 사랑아
속절 없는 사랑아

마지막 선물 잊어 주리라
립스틱 짙게 바르고
별이 지고 이 밤도 가고 나면
내 정녕 당신을 잊어 주리라

별이 지고 이 밤도 가고 나면
내 정녕 당신을 잊어 주리라

 

군수님 부탁드립니다. 저번 군수님이 좋아하는 노래, 저에게 가르쳐 줬는데, 군수님은 왜 그 노래를 좋아하는지 사연을 말씀 안하셔서  군수님이 좋아했던 노래 왜 좋아하는지 알고 싶어요

 

양동인 전군수 강추 클래식

 

 

 

 

교향곡 제3번 내림 마장조, 작품 번호 55, (또는 영웅 교향곡, 이탈리아어: Sinfonia Eroica)은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4악장 교향곡이다. 작곡가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이며 베토벤의 혁신적인 중기의 시작을 알리는 걸작이다.

1802부터 1804년에 걸쳐 작곡된 본 작품은 교향곡의 형식, 길이, 화성, 감정과 문화의 경계를 허물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시대 사이의 과도기적 시기에서 획기적 사건으로 널리 간주되고 있으며, 더불어 첫 번째 낭만주의적 교향곡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본 작품은 18283월에 파리에서 파리 음악원 관현악단에 의해 베토벤의 교향곡 중 첫번째로 연주되었다.

 

 

이 교향곡은 원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게 헌정하는 것을 의도로 했던, 베토벤의 가장 유명한 작품들 중 하나이다. 베토벤의 무급 비서였던 안톤 쉰들러의 회고록에 의하면, 유럽의 "해방자"를 기리기 위한 그 아이디어는 1798년 빈에 파견된 프랑스 특사 장밥티스트 쥘 베르나도트, 또는 베르나도트의 측근으로서 방문한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9번의 헌정자 루돌프 크로이처에 의해 제안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베토벤의 제자 페르디난트 리스에 따르면, 그 아이디어는 작곡가 자신의 것이었다. 리스의 설명처럼 베토벤은 고대 로마의 가장 위대한 집정관처럼 나폴레옹에 대해 높은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 1804년 초 악보를 완성했을 때 그는 표지에 Buonaparte ("보나파르트")라고 썼고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원고를 탁자 위에 자랑스럽게 올려놓았다.

 

 

보나파르트는 베토벤과 단 1년 차이인, 같은 동시대 사람으로서 베토벤의 감탄을 자아낸 인물이었다. 베토벤은 거의 의식적으로 나폴레옹과 그의 운명 사이에서 수평 관계를 확립하려고 했으며, 보나파르트의 모습으로 구현된 프랑스 혁명의 이상에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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