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애호가 이태상의 그림 여행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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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애호가 이태상의 그림 여행 ①
  • 지리산힐링신문
  • 승인 2022.01.09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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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란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에서 도(道)와 함께 노니는 독락(獨樂)의 유희요, 천회지흥(天藾之興)의 지필묵으로 연주하는 무성(無聲)의 음악이다.” -友山 송하경.

경남 거창군 위천면에 천하절경 수승대가 있다. 동방의 언건(堰蹇=우아하게 춤추는 모양)으로 그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시대를 초월, 수많은 유림·시인·묵객들이 그 아름다운 모양을 한번 더 보고자 발길을 끊지 않는 곳이다. 수승대 사이로 위천이 흐른다. 위천의 물길 거슬러 첩첩산중에 들면, 그윽한 연하(煙霞) 속에 우뚝 선 바위 하나 있으니, 물을 차고 기어나오는 신구(神龜)인 듯, 용마(龍馬)인 듯 그 형상이 자못 기묘하다. 등에는 천년 노송(老松)이 둘려쳐져 선학(仙鶴)이 노니는 곳이다. 조선조시대 수많은 선비들이 이곳을 찾아, 그 절묘한 풍광에 도취된 나머지, “별천세계 단구(丹丘)로다라고, 노래했다. -오필제 향토사학자.

 

수승대 우측에 고색창연한 마을이 있으니 이름하여 황산마을. 이곳에 유암(裕菴) 신왕용(愼王鏞) 서예가가 산다. 유암 선생은 안의향교 전교(典敎)로서 유학의 맥을 잇고 있다.

 

力拔山氣蓋世(역발산기개세)”

 

유암 선생 서예 작업실에 들어서면 제일먼저 방문객 눈을 사로잡는 글이 있다.

인력 (忍力)! 전절(轉折)이 뚜렷하다. 여기서 전은, 붓의 방향을 바꿀 때, 곡선으로 돌리는 것이며 절은 봇을 엎어 꺾어서 방향을 바꾸는 것을 말한다.

유암 선생이 쓴 인력, 글씨도 힘차거니와 보는 이 마음 속에 호연지기를 불러 세운다. 힘 력 자를 보고 있자니, “力拔山氣蓋世(역발산기개세)” 고사가 뇌리 속에 떠오른다,

힘은 산을 송두리째 뽑아낼 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온통 뒤덮을 만하다’,

영웅의 풍모를 일컬을 때 주로 쓰는 말이다. 역사에는 저 옛날 천하를 두고 유방과 한바탕 힘겨루기를 벌인 초패왕 항우가 한창때인 서른에 스스로 목숨을 끊기 직전 읊조린 垓下歌(해하가)’의 첫 구절로 등장한다. 유암 선생의 일필휘지, “인력을 코로나 시대에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 장애인 벗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또하나, 선생 누옥에 눈길 끄는 글이 있으니, 명심보감 팔반가이다. 팔반가(八反歌) 여덟 수()는 어버이를 봉양하고 아이를 기름에 있어서, 그 부모와 자식의 사이에서 갖는 여덟 가지의 상반된 마음을 비교하여 읊은 노래이다. 선생은 전서체로 이 시를 써 병풍을 만들었다.

勸君養親須竭力(권군양친수갈력)

풀이하면 그대에게 권하노니, 어버이를 봉양함에는 모름지기 힘을 다해야 할 것이다.”

유암 선생은 이 시대 마지막 효를 실천하고 있다. 연전 지산신왕용효행록(芝山愼王鏞孝行錄)을 펴냈다. 발행처는 안의향교, 보전출판사에서 인쇄했다. 서문(序文)에 이런 글이 적혀져있다. 안의향교 (책 발간 당시) 백원택 전교가 글을 썼다.

우리 선조께서는 어릴 때 부터 선비의 정신을 익혀 왔습니다. 예절을 중시하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사람이 가져야할 도리를 사지소학, 명심보감, 대학, 논어를 통해서 익혀왔습니다. 이것은 배움으로 끝이 아닌 실천 하는데 정성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지산 신왕용 효행록(芝山 愼王鏞 孝行錄)편저자 신왕용은 그 부친 학범(學範)께서 별세하였을 시, 공직 중에 있음에도 상례절차에 한 치도 착오도 없이 예장하였으며, 효성이 하늘에 까지 다달아 온 세상 만방에 칭송이 자자 하였으며 대소상(大少喪)은 물론이고 매 삭망(朔望)에 찬물(饌物)을 공양하였으니 그 정성은 이루 말할 수 없었도다. 지금도 사우(祠宇)에 위패를 봉안하고 매 삭망에 분향을 결하지 아니하니 향리주민들의 천장에 의하여 성균관장의 효행상을 2004년에 받았으며 타의 귀감이 됨으로 전 유림(儒林)들은 뼈속 깊이 본 받고 새겨야 할 것이다

유암 선생은 부친이 별세하자, 부친의 은공을 기리기 위해 3년상을 치뤘다. 3년상이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부모님의 무덤 가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3년동안 무덤을 지키는 것을 말한다. 3년상을 하는 까닭은 뭘까? 공자 말씀에 따르면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가 3년 동안 돌봐줘야 비로소 사람이 된다. 그 부모님의 은혜를 이 삼년상을 통해 부모님께 다시 갚아야 한다

 

필자(이태상)는 유암 선생의 서예를 사랑한다. 유암 선생의 글을 보며 마음을 고쳐잡는데 게으름을 피지 않는다.

선생의 서예속에 담긴 의미를 풀이해보면.

 

이태상 소장작품 <손강영설> 

 

손강영설(孫康映雪), 풀이하면 중국 사람 孫康(손강)이 눈빛에 책을 비추어 읽었다. 고생하여 학문에 힘씀. 오랫동안 고학함. 螢雪之功(형설지공)과 같다. 출전은 蒙求(몽구)’.

손강영설은 그옛날 중국땅에 손강이라는 사람이 살앗는데, 어릴 적 집이 몹시 가난해서 기름을 살 수 없었다 합니다. 그래서 겨울밤 흰 눈에 글씨를 비추면서 공부했다(康家貧無油 常映雪讀書·강가빈무유 상영설독서)지요. 그결과 그는 말단 관리에서 승진을 거듭해 오늘날 감사원장에 해당하는 어사대부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와 유사한 사자성어로 광형착벽(匡衡鑿壁)’도 있습니다. 광형이라는 사람 역시 집이 가난해 등불을 켤 기름이 없어 이웃집 벽에 구멍을 뚫어 새어 나오는 불빛으로 글을 읽어 마침내 큰 학자가 됐다고 합니다. 모두가 가난이라는 현실을 탓하지 않고 노력한 결과로 큰 인물들이 됐습니다.“

형설지공(螢雪之功)은 가난한 사람이 반딧불과 눈빛을 이용해 고생 속에서 공부함을 일컫는는 뜻.

 

 

 

지족불욕(知足不辱), 이 글은 노자 제44장에 나온다. “분수를 지키는 사람은 욕을 먹지 않는 뜻일세. 우리 인간은 부질없는 욕심으로 가득차 있소. 그래서 언제나 부족함을 느끼며 불평과 불만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지. 그런 사람은 평생을 두고 마음속에 번민과 갈등을 느낄 터, 그런 생지옥 속에서 어서 벗어나라는 것이 이 사자성어 속에 담긴 의미라오.”

그렇다. 공연히 욕심을 부리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이상향이다. ‘채근담눈앞의 일을 만족하면 그것이 곧 선경이요, 만족할 줄을 모르면 그것이 곧 속세(都來眼前事 知足者仙境 不知足者凡境)”라며 세상에 나타나는 모든 원인을 잘 쓰면 살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잘못 쓰면 죽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總出世上因 善用者生機 不善用者殺機)”고 한 바도 궤를 같이한다.

 

유암 선생께서 붓을 들어 見賢思齊(견현사제)를 쓴다. 현명한 사람을 보면 그와 나란하기를 생각하다.’라고 해서 훌륭한 사람을 알아보고 본받자는 듯이다 이 글은 논어에 나온다. 공자가 말한다. “어진 덕을 갖춘 사람을 보면 그 사람과 같아야 져야지.’라고 생각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지 못한 사람, 어질지 못한 사람을 보게 되면 혹 내 자신의 내면에 그와 같은 점이 있는지 스스로 반성을 해야 된다.”라고 공자는 얘기하고 있다.

한문으로 된 원문은 이렇습니다. 子曰(자왈), 見賢思齊焉(견현사제언) 하고, 見不賢而內自省也(견불현이내자성야) 니라.

어진 이를 만나면 우리는 그와 같아지기를 희구합니다. 말씨나 행동방식이나 사고방식이 닮아가는 것이지요. 그러나 어질지 못한 사람을 만나면 그를 정죄하기에 앞서 우선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내가 어질지 못하지나 아니한지를 반성해야 합니다. 내가 남이 어질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어질지 못함의 기준이 이미 나에게 있는 것이므로 내 자신이 그 기준에 합당한 존재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지를 먼저 반성해봐야 한다는 것이죠.“

 

 

 

끝으로, 선생께서, 미디어힐링 독자들에게 상지(尙志) 두 글자를 쓰신다. 뜻을 고상하게 갖는다는 말. 출전은 孟子(맹자) 盡心上篇(진심상편)이다.

상지(尙志)는 지()가 마음이 가고자 하는 바이기에 마음의 근원을 생각하고 그곳으로 되돌아가려는 것이고 이때 생각()은 마음에 뿌리하고 있는 인의예지로 지()를 이끌어 자신을 돌이켜보게끔 한다. 이로써 상지는 객관적인 판단과 근원적인 자기 회귀를 가능하게 하고, 더 나아가 성실함을 이루게끔 하는 계기이자 조건으로서 행위자로 하여금 도덕적 주체로 설 수 있게끔 하는 맹자 고유의 도덕성의 한 원리적인 개념이라 하겠다.

맹자(孟子)'에 보면, 제나라 왕자가 맹자에게 선비란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자 맹자는, 선비는 뜻()을 소중하게() 여기며 자신의 의지와 꿈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선비가 추구하는 뜻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냐고 왕자가 묻자 맹자는 '()’'()'라고 대답합니다. '()'은 사랑입니다.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선비의 마음을 '()'이라고 합니다. '()'는 정의입니다. 혼자만의 독식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정의, 내 것이 아니면 눈도 돌리지 않는 선비의 올바른 선택이 바로 '()'입니다. 우리도 새해를 맞이하여 상지의 정신으로 육체적으로나 고상하게 아름답게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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