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천초 47회, 친구 양원용 따님 결혼식에 참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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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천초 47회, 친구 양원용 따님 결혼식에 참석하다
  • 지리산힐링신문
  • 승인 2020.01.04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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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천면 금곡출신
위천초 47회, 거창고 졸

 

중국의 옛시인, 도연명(陶淵明)유시상에게 화답하다(和劉柴桑)’란 시에 친구가 나온다.

 

산과 물로 오랫동안 초대 받았으니, 내가 어찌 주저할 것인가. 다만 친한 옛 벗들 때문에 살 곳 찾아 가겠다고 차마 말을 못했다(山澤久見招, 胡事乃躊躇, 直爲親舊故, 未忍言索居).”

 

친구(親舊)를 달리 동, 벗이라 부른다.

 

서로 마음이 통하는 벗은 지음(知音)이라고 한다.

우리 선조들은 시문(詩文)을 지을 때 벗을 붕우로 표현했다. 벗 우()는 좌(()에서 손을 뜻하는 부분()과 손(, )이 합쳐진 회의(會意) 자다. 손과 손이 한 방향을 향하는 모습이다. 서로 손 잡고 돕는다는 의미다. 설문해자(說文解字)는 벗 붕()을 봉황()의 상형(象形) 자로 풀이했다. 봉황이 날 듯 새 떼가 무리 지어 나는 모습이다. 그래서 이해를 같이 하는 사람끼리 어울려 만든 당파를 붕당(朋黨)이라 한다. 주역(周易)군자는 붕우와 함께 (도의를) 강습한다(君子以朋友講習)”는 구절이 나온다. 이를 동문(同門)이 붕이요, 동지(同志)는 우라고 풀이했다. 스승이 같으면 붕, 뜻이 같으면 우인 셈이다.

 

친구는 종류도 다양하다. 잘못을 솔직히 충고해 주는 친구는 쟁우(諍友), 도움이 되는 친구가 익우(益友), 나이에 거리낌 없이 허물없이 사귀면 망년교(忘年交).

 

한 해가 저물어가는 2019127일 토요일.

위천초등학교 47회 여섯명이 망년교(忘年交) 딸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거창소방서 앞에 집결했다. 망년교 이름은 양원용,

참석자는 신용국(황산마을 돌담사이로 주인), 유순옥(마리면 율리서 소를 키운다), 손신구(위천면 소재지 서울식육식당), 김광만(전 거창농협 상무),  필자 조광환, 유정연(위천면 금곡농장 닭 공장경영) (이하 경칭생략).

김광만이가, 호주머니에서 핫팩 몇 개를 건낸다. “야 오늘 날씨가 보통 아이다, 서울 까정 가다가 얼어죽겠다. 이 것 빤수 속에 집어넣고 조물럭조물럭 하몬, 동장군도 아이고 무시라 하몬서 도망갈키다, , , 하나씩 보급!”

루머(?)에 따르면 김광만은 2020, 닥터(의사) 며느리를 본다고 한다. “와 아들내미가 대단하네? '

추후 광만이 아들 스토리를 본지에 심층취재해볼까 한다.

며느리 볼 때 거창이 디비지도록 한턱 쏜다고 하니 동문 여러분, 기대하고 고대하고 파마하시라!

다음은 김광만 프로필.

◇ 거창중앙고 23회·위천초 47회·위천중 16회 졸업, 경남도립거창대학경영과 졸업

◇ 거창농협 38년 근무

◇ 농협중앙회장 공적상

◇ 농협지역본부장 공적상

◇ 조합장 공적상 수상 등

◇ (전)하나로마트장 점장 (전)대동지점장, 경제상무 (전)수신 상무

◇ 거창군 73동우회 회장 역임

◇ 거창군 농협 중앙고 동문회 회장 역임

 

 

 

 

 

따님 지영씨

 

 

우리를 실은 차는, 대구로 향했다. 대구서 대구, 부산 출신 위천초등학교 47회 동기들과 합류했다.

결혼식 장소가 오데고?” “? 보자, 청첩장에 보니카, 경기도 부천시 상동역 옆에 있다카네? 라비에벨웨딩 노블리안 웨딩컨벤션, 네비 칙어라! 시간은 1230.”

 

양원용 향우

 

 

우리를 실은 차는, 서울 쪽을 향했다.

 

 

"양원용 검색 보니카, 말이야. 이 친구, 전자분야에서 대단하더구먼, 경기도 부천시에서 FTC(FutureTechnologyCorporation)라는 전자 회사 대표인데, 자체 개발한 스마트폰 필름 임팩트 터치가 세계적으로 이름이 높다고 카데?”


양원용이 만든 임팩트 터치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스마트폰 필름이다. 폴더폰의 압력방식과 스마트폰의 정전방식을 혼합해 만든 제품이다.

다음은 양원용의 말이다. “폴더폰은 압력방식이었고 스마트폰 시대에 접어들면서 정전방식으로 변했다. 정전방식이 좋은 점도 있지만 손가락 외에는 터치가 안 된다는 불편함이 있다

이 두 가지 장점을 혼합해 만들었기 때문에 손가락 뿐만 아니라 어떤 사물로든 터치가 가능하다정전방식은 물속에서 조작이 어렵지만 임팩트 터치는 압력방식도 적용됐기 때문에 물속에서도 사용이 가능하다


삼성전자에 스마트폰 액세서리를 공급하던 양원용은 어떤 사물로든 터치가 가능한 필름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4년 전 처음으로 필름 개발을 시도했다.

그는 “4년 전에 지금과 유사한 제품을 개발했었는데 결과적으론 실패했다기술만 생각하다보니 디자인을 신경쓰지 못한 게 실패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이후,양원용 대표는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FTC를 함께 이끌고 있는 김종호 대표를 만나 다시 제품 개발에 몰두했다.
화학을 전공한 김 대표와 전자를 전공한 양 대표가 지혜를 모았다.
제품의 기능부터 디자인까지 꼼꼼하게 살폈고, 16개월에 거친 연구 끝에 임팩트 터치가 완성한 것이다. 연구에 매진한면서 양 대표가 낸 특허만 14건이다. 양원용은 말한다. “휴대폰을 시작으로 네비게이션, 태블릿PC LCD 패널 모든 제품에 우리의 기술을 적용하는 것이 목표라며 소방관, 의료진, 군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폭 넓게 쓰일 수 있도록 기술 개발에 더욱 매진할 것이다

 

우리들의 친구 양원용은 1960년 거창군 위천면 금곡에서 부 양재환 모 유도출 사이에서 태어났다. 돌이켜 보건데 그의 유년시절은 빈궁했었던 것같다.

그러나 (초등학교 시절) 그는 총명했다. 위천중학을 거쳐 거창고등학교를 나온 원용은 예비군중대장 형을 따라 상경, 오랜간 전자업체에서 일했다. 이어 독립, 오늘날 굴지의 전자메이커 회사를 경영하게 된다.

 

12시께 차는, 부천 결혼식장 앞에 도착했다. 양원용 딸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하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결혼식장 입구에서 양원용 부부가 하객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아이고 칭구야, 거창 부산 대구, 몬데서 온다고 수고 많았다! 어서 온나 어서어서!”

양원용이가 두 팔 벌여 우리들을 반긴다. 양원용이를 본 순간, 필자는 1년전 옛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1년전 필자는 다큐먼터리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일본으로 가야 했다. 일본행 비행기를 타기 전 서울 친구들과 대포나 한잔 하려고, 양원용에게 전화를 했다. “, 광환이가? 우짜노, , 지금 수출 상담차 외국에 있다, 우짜몬 좋노, , 우리집에 방 많다, 오늘밤 우리집에 가서 자고 가라

이렇듯 양원용의 마음씀씀이는 보살과 같았다. 필자를 본 양원용은, “조광환, 니 채널A에 자주 출연하더라? 배때지 위에 트럭을 올려놓고(借力) 쑈를 하던데, 그것보고 재미있어 죽을 뻔 했다.”

이 말이 무슨 말인고 하니 필자는 연전, 향리 수승대에서 채널A 특종세상에 출연, 기공수련 모습을 촬영한 적이 있다. 이 프로그램이 전국적으로 방영되어, 졸지에 필자가 유명세를 떨친 적이 있었다, 각설하고 우리 일행은 양원용의 딸 지영씨의 결혼을 축하하고 식장을 빠져 나왔다. 원용의 배려에 의해 우리는 부천 인근 고려호텔에서 하루밤을 묵었다. 이날 밤, 우리는 소주를 마시며 그옛날 위천초등학교 시절로 되돌아갔다.

 

고려호텔에서의 조식, 오랫만에 친구들과 만나 멋있는 아침식사를 함께 했다

 

 

원용이 졸마, 어릴 때, 금곡서 등교한다고 고생 참 많이 했다. 금곡서 핵교까지 걸어서 한 40분 걸렸지 아마?”

금곡마을은 위천면의 남쪽 끝 산밑에 자리하고 있다. 옛날에는 우곡(牛谷)이라 불렀다. 금곡(金谷)마을은 고려말 거창 유씨(劉氏)에 의해서 생긴 마을이다. 일명 쐬실 이라고 부른다.

당시 우리핵교댕길 때 금곡촌놈이라고 약을 참 많이 올랐다 아이가, 위천면 소재지가 압구정동 이라몬 금곡은 상계동 달동네 아이가, 달동네 출신이라고 야꼬 마이 죽었다 아이가?”

 

그때 야코 많이 묵엇던 금곡촌놈들이 요새 똘똘 뭉쳐 저것들끼리 회()도 맹글고 자주 만나난다카더라!”

 

우리 핵교 당길 때 오야봉이 있었으니 그이름, 유재호 아이가, 시라소니 같이 생겨가지고 싸움 아주 잘했지? 당시 위천면소재지 오야봉은 지금 위천면에서 중앙주유소 경영하는 임종문이었지? 저그 아부지가 과자 장사를 했는데 골마 만날 저그 아부지 과자 훔쳐와 가지고 조직들을 관리했지. 하하하.”

종문이는 지가 유재호보다 주먹을 더 잘 쓴다고 그러던데?”

지 혼자 하는 소리지 뭐

이렇게 옛추억을 회상하며 주거니 받거니 독한 술을 마신, 우리는 그날밤, 아득한 옛날, 위천초등학교 까까머리 학동이 되어 신나게 옛일을 추억했다. 취재사진 조광환 기자kwa1655@hanmail.net

 

 

아래 사진들은 거창군 위천초등학교 47회 동문, 현재 살아가는 모습들이다.

학창시절 자칭 최고 오야봉 임종문
마리면 율리에서 소키우는 유순옥 동문
수승대 한과 신용국 동문
금원산 산불감시원(거창지부 회장) 정동출 동문

 

금곡마을에서 양계업을 하는 유정연
신강용(전 황산마을 이장님)

 

 

위천초등학교 47회 총동창회장 손신구
남상면 우리방아간 사주님 조윤희
오른쪽 부터 유숙자(서울) 김광만(거창) 우윤선(대구) 최진길(진주) 유조영(부산) 유점순(부산) 유순옥(거창)=촬영장소<인천 바다열차>

 

유창숙 동문이 운영하는 부천시 뱅뱅이 와인바에서 회포를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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