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영 여행작가가 발견한 아득한 찻집 "多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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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여행작가가 발견한 아득한 찻집 "多방"
  • 지리산힐링신문
  • 승인 2020.01.18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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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기영 여행작가. 나무연구가.

 

 

 

 

이제는 옛날, 그보다도 먼 내 어린시절 누리동 하늘 숲속에 외딴 초막이 내가 살던 옛집이다.

그 집 굴뚝머리에 몇십년이나, 아니 한 백년 자랐을까 큰 물푸레나무가 있었다.

바람이 불며, 비가 올 때면 나뭇잎 쓸리는 소리와 비 듣는 가락이 흡사 거문고 소리 같아서 우리는 그 나무를 풍악나무라고 했다.

늦여름이나 장마철이 되면 낮은 구름이 자주 그 나무 위에 내려앉곤 했다. 물푸레나무는 덕이 많고 그래 어진 나무다.

어린이 새끼손가락 보다도 가는 물푸레나무는 훈장 고선생님의 손에 들려 사랑의 회초리가 되기도 하고 아버지 농기구의 자루가 되어 풍년을 짓기도 했다. '화열이'가 호랑이 잡을 때 쓴 서릿발 같은 창자루도 물푸레나무였고 어머님이 땀으로 끌던 발구도 역시 그 나무였다.

물푸레나무 굳센듯 휘어지고 휘어져도 꺾이지 않고 다시 서는 어느 충신과 효도의 정신이며 성현의 사랑이다 나에게 이 물푸레나무의 이름을 다시 지으라고 한다면 나는 성현목이라고 이름하리라 물푸레나무

-황금찬 옛날과 물푸레나무

 

 

 

황금찬(1918~2017) 시인은 살아생전 다방을 무척 좋아했다. 단골집은 서울 혜화동 '사르비아 다방. 시인은 다방 이름 사르비아가 너무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사르비아라는 시를 쓰기도 했다. 황금찬 시인의 회고담이다.

'사르비아' 다방에서 커피를 주문하면 로투스(Lotus)라는 달착지근한 과자가 나온다. 커피와 로투스 과자를 같이 먹으면 커피 맛이 좋아 진다. 내가 사는 함양에도 사르비아같은 다방이 있다. 다방이름도 다방(多房)이다. 지리산함양시장 안에 있다. 가끔 이곳에 가서 다향에 취해가며 책을 읽는다. 메뉴판에 보이차가 보인다.

보이차, 아름다운 구름의 고향 채운지향(彩雲之鄕)이라 불리는 윈난(雲南)의 청정한 산에서 태어나 뜨거운 솥에서 시련을 겪고 햇빛에 말려지며 강해지고 돌에 눌려 틀을 잡고 말 등에 실려 비와 바람을 맞으며 인생과 풍류를 알고 어두운 항아리 속에서 수십 년 동안 모나고 각진 것을 다듬어 원만한 도()를 이룬 다음 몸을 나누어 호()에 들어가 정갈하게 씻은 다음에야 자기를 녹여내어 붉고 투명한 한 잔의 차로 부활한다.


이 한 잔의 보이차는 분명 단순한 차 이상의 무엇을 포함하고 있다.

보이차는 모양이 둥근 것, 네모진 것, 사발 모양의 것, 그리고 덩어리로 만들지 않은 산차(散茶) 등으로 여러 가지이다. 차품(茶品)도 생차(生茶), 숙차(熟茶)등으로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윈난(雲南) 지방의 대엽종 차나무에서 딴 찻잎으로 만든 것이다.

세계 차나무 품종의 모수(母樹)라고까지 이야기되어지는 대엽종 차나무에서 딴 잎을 햇빛에 말려 만든 것이 보이차의 원료이다. 바로 만든 청병(靑餠: 生餠)은 마셔보면 한참 때 청년같이 강하고 기운이 넘치고 싱싱하지만 부드럽게 감싸주는 맛은 모자란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 겉으로 뛰던 기운이 갈아 앉고 맑고 그윽하며 깊은,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차로 변한다. 또 한 가지는 인공 악퇴발효(渥堆醱酵)시킨 숙차(熟茶)가 있는데 탕색이 진한 붉은 빛이고 맛도 진하면서도 순하고 부드러워 일반 대중이 쉽게 즐길 수 있는 수준의 차이다.

사람을 얼굴만 보고 판단할 수 없는 것처럼 차도 모양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
녹차를 마실 때 뜨거운 물을 호에 부으면 연초록으로 피어나는 찻잎의 신선한 맛과는 또 다른 새로운 차의 세계를 만나본다. 지리산함양시장 안에 있는 다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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