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제16대 예종왕 금원산에서 효심을 꽃피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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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제16대 예종왕 금원산에서 효심을 꽃피우다
  • 지리산힐링신문
  • 승인 2022.09.24 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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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군 위천면 금원산에는 가섭사라는 암자가 세워져있다

 

거창군 위천면 금원산에는 가섭사라는 암자가 세워져있다

가섭사는 신라시대에 세워진 고찰로서 가섭암 이라고도 불리워 졌다

마애 삼존불로 올라가는 길은 멀지는 않지만 길이 가파른 오르막길 이다

계단으로 된길을 올라 가면 바위 사이에 마애 삼존불이 나타난다

마애 삼존불은 보물 제530호이다

 

 

가섭암지 마애 여래 삼존 입상(迦葉蓭 磨涯如來三尊立像)은 거창 위천 가섭 암지에 있는, 고려시대 마애 여래 삼존불 입상이다

금원산 자연 휴양림 위쪽에 거대한 자연 동굴에 직립암벽을 얕게 파고 부조한 마애불로 침장한 얼굴 표정과 특이한 대좌형식 등에서 토속적인 느낌을 강하게 풍기는 불상이다.

중앙의 본존은 소발의 머리 위에 육계가 큼직하게 있다.넓적한 얼굴은 작은 눈과입,세모꼴의 몽특한 코,납작하고 긴귀 등은 토속적인 느낌이 강하다.밋밋한 어깨에 신체의부피감은 약회 되었고통견의 대의는 평판 적이며,간결한 옷주름이 중첩되어 있다, .대의 하단은 짧게 표현되어 두다리가 길게 노출 되었다 바위면 전체를 배() 모양으로 파서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를 만들고 그안에 삼존불(三尊佛) 입상을 얕게 새기고 있다.

중앙의 본존불은 얼굴이 비교적 넓적하며, 얼굴에 비하여 작은 눈. 코 .입. 밋밋하고 긴 귀. 등에서 둔중하고 토속적인 인상을 풍긴다.신체의 표현은 각지게 처리된 어깨,굴곡없이 차분한 가슴,막대 같은 다리와 좌우로 벌린 발 등에서 고려시대의 형식화된 면이 보인다 좌우 협시 보살은 본존불과 거의 같은 형식으로 조각 되었지만 어깨의 표현이 본존불 보다는 부드러운 곡선을 하고 있다 끝이 날카로워진 연꽃무늬 대좌(臺座)와 새의 날개 깃 처럼 좌우로 뻗친 옷자락등은 삼국시대의 양식과 비슷하지만,형식화 되고 도식적인 요소가 보인다.

이것으로 보아 이 불상은 삼국시대의 불상 양식을 계승 하면서도 고려적인 요소가 반영된 마애불상임을 알수 있다

 

고려16대 예종왕은 숙종의 74녀의 장남으로 태어났고 어머니는 명의왕후로 본관은 정주(貞州),성은 류씨(柳氏)다 예종의 어머니로 궁호(宮號)는 명복궁주(明福宮主)였으나,뒤에 연덕궁주(延德宮主)로 고쳤다.1099(숙종4년에 왕비로 책봉,1105년 예종이 즉위하자 태후가 되었다,

신박사(信朴寺)에서 병사(病死)하자 시호를 명의(明懿)라 하였다 능은 숭능(崇陵)이다

석굴의 입구쪽에 조상기(造像記)가 새겨져 있다,좌협시 보살 옆에 불상을 조성하게 된 이유와 경위를 적은 조상기(造像記)가 새겨져 있다.세로88cm가로77cm,깊이 약2cm 정도로 암벽을 파낸 다음 해서체로126자씩 총21행에540여 글자를 세겨 놓았으나 마모가 심하여 일부 글자는 판독이 어렵다.1989년에 동국 대학교 고고 미술 사학과의 학술조사팀에 의하여 조사 되었고 명문은 전각가 안광석(安光碩)선생님에 의하여 판독 되었다고 한다  조상기의 내용 중에는

고려16대 왕 예종(1106~1122재위)이 천경원년(天慶元年) 예종 6년에 1111년에 어머니인 명의왕후 왕생극락(往生極樂)을 위한 효심으로 조성 되었다고 한다 필자가 보건데 어머니인 명의 왕후가 돌아 가시기 이전에 미리 조성 한 것으로 보여 진다 왕후는1112년에 돌아가셨고 이불상은 1111년에 조성 되었다 효심에 관련된 한자는 念亡母 (념 망 모)이다 현대 불교에서도 예수제를 지낸다 생전 예수제는 살아있을 때 미리 수행과 공덕을 닦아 두는 재()의식으로 다음 생을 대비해서 죽은 후에 행할 불사(佛事)를 생전에 미리 닦는 것이다

우리는 금원산 가섭사 마애삼존불에 가면서 많은 생각을 가져봄 직하다 우리는 어머니에게

무엇을 해드려야 할지 요즈음 자식들이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계신 부모님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 코로나 신속 항원검사를 해서 음성 확인서가 필요 한데 매번 갈 때 마다 음성 확인서가 필요한 자식들로서는 좀 번거로운 것이다 그래서 요즈음 부모님이 건강하셔서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계시지 않고 자식들과 같이 사시는 것이 부모님이나 자식들 모두에게 축복인 것이라고 생각된다

한씨외전(韓氏外傳)에는 樹慾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라는 구절이 나온다.

나무는 고요 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 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렸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나라가 동방예의지국 이냐 하는 것은 논란이 있지만 그본래 정신만은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예의지국의 핵심 사상은()”. 노인과 부모님에 대한 효 사상 만큼은 우리나라가 다른 어떤 나라 보다 발달해 있다는 것. 그것이 한국 철학의 특성이다 서구사회나 다른동양 사회에서는 생산성과 관련해서 노부모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그동안 노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일반적인 풍습이었다 먹을 것이 넉넉지 않았던 시절에도 생산성이 낮다고 노인을 무시하지 않고 공경과 존경의 대상으로 대했다

요즈음 왜 자꾸 예종왕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 금원산 가섭사 마애 삼존 석불이 생각 나는지  모르겠다

이번 주말에 한번 들러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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