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재로 이름 높은 함양 출신 지공큰스님 특별인터뷰

취재/부산=조광환 기자 지공큰스님 010-8508-6357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동에 금동지장사가 있다. 이 절에 지공(智空) 스님이 주석한다. 스님은 오직 마음 하나 확실하게 닦겠다고 일치감치 산중(山中)으로 출가, 득도한 선승이다. 스님은 젊은 시절 ‘길 없는 길’에서 죽을 각오로 치열하게 무소의 뿔처럼 고독하게 수행했다. 몇 년씩 외딴 토굴에 들어가 용맹정진했다. 그 가시밭길 수행에서 스님은 무엇을 얻었나? 지공 스님은, 함양군 수동면 출신이다. 현재 부산 금동지장사 주지로 주석하면서, 법무부 부산교도소 교정협의회 부회장 교정위원, 영남매일 자문위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동국대학교 제55기 사회과학대학원 총학생회장,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석 박사 총동창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몽골에서 의학박사(흉부분야), 교육학박사, 사회복지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공스님은 부산 지역에서 천도재 스님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천도재는 특정한 사람이 죽은 후 일정한 시기에 행하는 의식과 모든 사령들을 위한 의식으로 나뉜다. 일정한 시기에 행하는 대표적 의식은 사십구재인데, 이는 사람이 죽은 후 명부의 시왕에게 1주일마다 심판을 받는다는 신앙에 기초하고 있다. 그중 7번째, 즉 49일째 되는 날의 염라대왕이 영향력이 크다고 믿어서 사십구재를 가장 크게 지낸다. 사십구재의 의식은 상주권공재·시왕각배재·영산재로 나뉜다. 상주권공재는 의식의 기본으로 대개 하루가 소요된다. 시왕각배재는 시왕신앙을 강조한 의식이고, 영산재는 법화신앙을 중심으로 크게 의식의 규모를 확장시킨 것이다. 그밖에 특정한 인물이 아닌 무주고혼을 천도하는 수륙재, 백중의 조상천도, 매달 음력 18일 지옥 중생을 구제한다는 지장보살에게 조상 천도를 비는 지장재가 있다. 한편 스님은 선화작가로 이름 높다. 특히 달마도에 조예가 깊다. 달마도는 중국 선종의 개조인 보리달마대사를 소재로 한 것으로 낙양 숭산의 소림사에서 9년간 면벽좌선하고 있는 ‘면벽달마’와, 갈대잎을 타고 양쯔 강을 건너는 ‘노엽달마’, 양무제와의 대담장면인 ‘초조문답’, 반신상 혹은 전신상의 ‘달마독존’ 등을 그렸다. 거칠고 자유분방한 필치와 감필법으로 묘사한 이 그림은 남송대의 선승화가들에 의해 유행하기 시작했으며 특히 일본에서 크게 풍미하였다.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에 널리 파급되었으나 조선 중기 김명국의 〈달마도〉가 현존작으로는 가장 유명하다. 지공 스님은 수도자로서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수행을 하면서도 세속을 초월한 고상한 취미를 선화(禪畵)에 담아낼 줄 아는 그런 분이다, 스님은 종종 달마 그림을 그려 불자에게 선물한다고 한다. 현재 부산 불자들 사이에서는 지공 스님 ‘달마 그림’ 덕분에 많은 불자들이 개운(공무원 판검사 배출, 환자 심신쾌차)을 했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달마 그림. 일종의 부적이지요. 부적 아무나 그린다고 효험이 있나. 아니지. 부적을 만들 때 택일 잘한 후. 목욕재계하고 동쪽을 향해 정수를 올리고 분향하고 절차가 복잡하잖소. 달마그림도 마찬가지 부처님 전에 예불을 올리고 기(氣)를 모아 그려야 효험이 있소이다” 달마도 그림을 소지하면 무병장수, 행운이 따른다는, 이런 미확인의 ‘믿음’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스님이 달마도의 부적효과에 대해 말씀하신다. “달마도는 중국 선종(禪宗)의 시조로 알려진 ‘달마(達磨, 보디다르마, 菩提達磨) 대사’를 그린 그림이지요. 달마는 남인도(일설에는 페르시아) 향지국(香至國)의 셋째 왕자로 태어나 대승불교의 승려가 된 인물인데요. 서기 520년경 중국에 들어가 9년간 면벽좌선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후 선종을 창시했고, 소림사(小林寺)에서 참선을 해 소림권법의 창시자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달마는 불교계에서 깨달음과 선(禪)의 세계, 선무도(禪武道)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지요. 달마가 신격화한 것은 그의 삶에 얽힌 설화와 관련 있소이다. 중국 양(梁)나라 무제(武帝)의 부덕과 오만을 질타하다 죽임을 당한 달마가 관 속에서 부활해 신발 한 짝만 남기고 서쪽으로 떠나갔다(西天行)는 이야기, 그리고 서천행을 하는 달마를 군사들이 쫓아가자 갈대 잎을 꺾어 타고 강물을 건넜다는 전설이 그것 아닌가요?”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동은 백두대간 금정산맥의 정기가 용솟음치는 곳으로 이름 나 있다. 금정산맥은 부산광역시의 척량 산맥(脊梁山脈)으로 낙동강의 동쪽 하안을 따라 북에서 남으로 뻗어 있다. 경상남도 양산시의 원효산에서 시작하여 부산광역시의 금정산~백양산~엄광산~구덕산~시약산~승학산 등으로 이어지다가 다대포의 몰운대에서 대한 해협으로 몰입한다. 금정산맥은 기본적으로 양산 단층 운동에 의해 생성된 산지로서 북동쪽이 남서쪽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융기되어 있어, 북동 사면은 대체로 급경사이고 남서 사면은 비교적 완만한 경동 지형(傾動地形)을 나타내고 있다. 금정산맥의 지명은 봉우리 중 가장 고도가 높은 금정산에서 따온 이름이다. 금정산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산정에 바위가 있어 높이가 3장 가량이다. 그 위에 우물이 있는데 둘레가 10여 척이며 깊이는 7촌쯤 된다. 물이 항상 가득 차 있어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빛은 황금색이다. 세상에 전하는 말로는 한 마리의 금빛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범천(梵天)에서 내려와 그 우물에서 놀았다고 하여 금빛 우물(金井)이라 하였고, 산 이름이 금정산(金井山)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금정산은 금빛 우물인 금샘(金井)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금정산맥 자락에 산성 고개(고도 390m이며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과 금정구 금성동을 연결), 만덕 고개 (고도 290m이며 구포와 동래를 연결), 불태령 (고도 284m로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만덕동과 성지곡을 연결), 구덕 고개 (고도 220m로 부산광역시 서구 대신동에서 사상을 연결), 대치 고개 (고도 130m로 부산광역시 사하구 괴정동과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동을 연결) 등의 여러 고개들이 있다. 금동지장사는 백두대간의 마지막 종착지 지점에 위치해 있다. 백두대간이 힘차게 남으로 뻗어내려 오다가 금정산이라는 큰 지기(地氣)의 저장고를 만든 뒤 여기서 또 한번 막강한 지기를 생산해 낸다. 이 기(氣)를 최초로 받는 곳이 바로 금동지장사이다. 풍수전문용어로 말하면 금동지장사는 ‘과협처(過峽處)’에 터를 잡고 있다. 과협처를 쉽게 풀이 해 보자. 백두산은 태조(太祖)요, 설악산은 고조(高祖), 금정산은 증조(曾祖)이다. 백두산 천지서 분출한 수 조(兆) 마력의 에너지가 금강산 설악산을 거쳐 마침내 금정산으로 이어진다. 그 정기가 마무리하는 곳이 이른바 금동지장사 터다. 금동지장사는 부산 만덕동 언덕, 금계포란(金鷄抱卵) 형국에 자리 잡고 있다.

2021-11-11     지리산힐링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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