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의 봄풍경

김용만 사진작가 작품

2019-12-28     지리산힐링신문

 

 

 

*입춘(立春)날 대문에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라는 입춘방을 써붙이고 나면 길고 긴 겨울은 끝난 거나 다름없었다. 산마루와 응달에 희끗희끗 흰눈이 쌓여있어도 *우수(雨水)가 지나면 보란듯이 추위가 한풀 꺾였다. 봄비가 내린다는 절기인데도 이때쯤이면 어김없이 꽃샘추위가 한 두차례씩 몰아치고 봄눈이 내렸다. 그러나 어른들은 우수 경칩이면 대동강물도 풀린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경칩(驚蟄) 무렵 봄비가 한번 내리고 나면 산천은 완연한 봄이었다. 냇가의 버들강아지가 배시시 눈을 뜨고 뱀과 개구리는 겨울잠에서 깨어났다. 대보름 쥐불에 그을린 밭둑과 논둑에 도란도란 속삭이듯 돋아나는 새싹들. 마늘밭에 덮어뒀던 짚을 뚫고 올라오는 마늘촉. 눈에 덮여 누렇던 보리싹에도 파란 물기가 돌기 시작했다.

양지바른 언덕길에서는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무덤가에는 잔설을 뚫고 할미꽃이 피어있곤 했다.

언 땅을 뚫고 밖으로 나온 개구리들은 물이 괸 곳에 까만 점이 알알이 박힌 우무 비슷한 경칩을 토해놓았다. 어른들은 경칩날 경칩을 먹으면 허리 아픈 것이 낫는다며 주전자를 들고 나가 개구리알을 건져 먹었다.

얼었던 논두렁길이 녹아서 질퍽질퍽해지면 아이들은 요리조리 녹지 않은 땅을 밟으며 마실(마을) 다니기에 바빴다. 겨우내 게으름을 피우던 어른들은 논과 밭에서 묵은 잡초를 뽑아내고 옥수수 줄기와 돌멩이를 주워내며 슬슬 농사일을 준비했다.

개학하자마자 봄방학을 맞은 계집애들은 떼를 지어 부엌칼을 들고 양지바른 밭고랑으로 나갔다. 할머니들도 까맣게 탄 얼굴로 옹기종기 모여앉아 달래, 냉이, 씀바귀 같은 봄나물을 캤다. 이런 봄나물을 된장과 함께 끓여 밥상에 올리면 입맛이 돌아왔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따스한 햇볕을 따라 밀린 겨울 빨래 뭉치를 *'다라이'에 가득 담아들고 개울가 빨래터로 나갔다. 납작한 빨랫돌은 두툼한 겨울 빨래를 문지르고 비비기에 알맞았다. 새댁은 흘러내리는 깨끗한 물에 겨우내 찌든 땟국물을 헹궈내면서 힘찬 방망이질로 시집살이 설움을 풀어내곤 했다.

눈녹은 물로 제법 불어난 개울물은 큰 돌, 작은 돌 사이로 졸졸 소리를 내며 흘러갔다. 밑바닥이 훤히 비치는 개울에는 피라미떼가 헤엄쳐 다녔다. 엄마를 따라나온 아이들은 징검다리를 건너다니며 피라미를 쫓다가 물에 빠지곤 했다.

아이들이 개울가에 불을 지펴놓고 아직은 동작이 굼뜬 물고기를 잡다가 산불을 내고 혼구멍이 나는 것도 봄철이었다. '봄불은 여우불'이라는 속담처럼 한번 번지기 시작한 불은 꺼진 듯하다가도 다시 살아났다. 솔가지를 꺾어들고 닥치는 대로 꺼대도 저만치서 화르륵 불길이 일었다. 겁이 난 아이들이 솔가지를 내던지고 줄행랑을 쳐 기어코 큰불을 내고야 말았다.

나무들이 연초록 새순을 내밀기 시작하면 어른들은 *못자리용 씨나락을 고르고 봄배추, 감자, 옥수수, 푸성귀 등의 씨를 뿌렸다. 보리밭에는 거름을 내거나 비료를 뿌리고 보리밟기를 해줬다. 초겨울에 씨뿌린 보리는 얼었던 땅이 풀리면서 부풀어올라 뿌리가 약해지기 때문에 꼭꼭 밟아줘야 했다. 때로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동원해 보리밟기를 도와주기도 했다.

이때쯤이면 땅심을 살리기 위해 논에 흙갈이를 해주었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일 때는 '객토운동'을 벌여 흙갈이를 장려하기도 했다. 논밭에서는 쟁기질로 땅을 갈아엎느라 분주했다. 쟁기를 끄는 소는 "이랴 이랴, 워어 워어" 하는 소리를 신기하게도 잘 알아들었다.

70년대부터 새마을운동과 통일벼 보급으로 *'보릿고개'라는 말이 사라지고는 있었지만 봄철 끼니 걱정은 남아있었다. 광 속 쌀독에 쌀이 달랑달랑해지면 무를 생채처럼 썰어넣어 지은 무밥을 먹는 집도 있었다. 밀가루 한줌에 산나물을 넣어 죽을 쑤어먹기도 했다.

3월이면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고 종달새와 물총새도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지난해 살던 집을 꼭 찾아온다는 제비는 진득한 논흙과 풀을 물어다 처마밑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았다. 지지배배 울어대는 새끼제비에게 벌레를 물어다 먹이는 정경도 이제는 초가집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우물가에는 매화가, 학교 울타리에는 개나리가 꽃을 피웠다. 고샅길에는 복숭아꽃 살구꽃이 꽃대궐을 차렸다. 닭장에서 알을 품던 암탉은 어느새 병아리떼를 몰고 잿간을 휘젓고 다녔다. 싸리문밖 텃밭에는 장다리꽃이 노랗게 피어났다. 텃밭에서 자란 상추 아욱 오이 쑥갓 등 온갖 푸새들은 일꾼들의 들밥 찬거리가 됐다.

노루꼬리 만큼 길어지는 봄 해를 따라 어느새 온산에 진달래가 만산홍(滿山紅)을 이루었다. 진달래가 많이 피어있는 곳에 눈썹 빠진 *용천뱅이가 숨어있다가 아이를 잡아간다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그래도 아이들은 꽃잎 몇장 따먹거나 빈 소주병에 꽃을 꽂아두려고 진달래 꽃밭을 헤매고 다녔다. 괭이와 삽을 들고 뒷산에 올라가 칡뿌리를 캐는 것도 봄날의 즐거움이었다. 봄철 칡뿌리는 알이 실하게 배고 물이 많아 먹기에 그만이었다.

간지러운 봄바람에 스스르 졸음 속으로 빠져들던 봄날. 화창한 햇살에 홀려 들과 산으로 쏘다니다 보면 하루해가 짧았다. 그 시절 그 풍경은 가고 없지만 올해도 변함없이 남녘에서 꽃바람이 올라오고 있다.

김석종|경향신문 상무이사

 

 

 

 

 

 

 

 

 

 

 

 

 

 

 

 

 

 

 

 

 

 

 

 

 

 

 


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