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값을 쓰리 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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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값을 쓰리 당하다
  • 지리산힐링신문
  • 승인 2019.12.24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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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미 동화작가

 

소는 나를 닮았다. 부부만 닮은 게 아니다. 동물도 주인을 닮는다. 나처럼 말도 잘 듣고 눈물도 많다. 여름이면 소는 소마구 (외양간 )앞 말뚝에 매어진다.

한밤중 소변을 보기 위해 마루로 나오면 소는 그동안 숨죽이며 쉬던 숨을 한꺼번에 크게 내 몰아 쉬었다. 소는 겁이 많다는 게 맞다. 볼일을 보고 소의 목을 쓰다듬었다. 달빛 아래 눈에 맺힌 눈물이 보였다. 어디가 아픈 것일까?

짠한 마음이 들며 다시 한 번 쓰다듬어주고 방으로 들어왔다.

 

 

 

다음날 아침이었다. 엄마가 소를 팔아야겠다고 하셨다. 돈이 필요했다. 서울에 있는 오빠와 언니 학비를 보내야하고 농사자금도 필요했다. 어젯밤 주인의 마음을 읽은 소는 기운이 없었는지 모른다. 몇 년 동안 나는 소와 함께 해왔다. 학교에서 돌아와 동네 사내아이들과 뒷산에 소를 풀어 놓고 산 아래 딸기 밭에서 딸기도 따먹고 , 광산으로 난 길 바닥에서 구슬치기를 하다 소를 몰러 갔다.

해가 지면 소가 스스로 내가 있는 곳으로 내려오기도 했다. 소는 대개 대장 소를 따라 다니며 풀을 뜯어먹었다. 착하게도 소는 멀리 가지 않고 우리의 근처에서 풀을 뜯었다. 물론 소가 없어져 온 산을 찾아 헤맨 적도 있었다. 다행히 하루가 지나 다른 동네에서 소를 찾아왔다. 그렇게 키웠던 소를 판다고 한다.

그날부터 소는 벌교 소시장으로 팔려 갈 때까지 눈물을 흘렸다. 엄마가 벌교시장으로 소를 팔러 가는 날 아침, 나는 엄마보다 일찍 집을 나서 학교를 갔다. 소가 엄마 손에 끌려가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 엄마는 벌교 장에서 소를 팔고 8 만원을 받아왔다. 8 만원 중 일부는 서울에서 공부하는 언니와 오빠에게 보냈다.
한 달 후 엄마는 5 만원을 가지고 보성 장으로 송아지와 염소를 사러갔다. 혹시나 돈을 잃거나 쓰리를 당할까봐 복대에 넣어 가슴 밑에 묶었다. 먼저 송아지를 사기 위해 소시장을 한 바퀴 돌고 마음에 든 송아지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송아지가 참 실하게 보이지요. 나도 이 송아지가 마음에 드는데 …….”
60 대 남자와 40 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엄마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자기도 소를 사러왔다며, 엄마가 보기에 그 여자는 소를 키울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옷차림새며 피부가 농사꾼처럼 보이지 않았다.
“소 키울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데 소를 키워요?”
“그렇게 보여요? 우리 동생이 깡패처럼 일도 안하고 빈둥거려 정신 차리고 일하라고 두어 마리 사주려고요”
그 여자는 계속하여 엄마 곁을 따라다녔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상하게 엄마는 그 여자를 따라다니고 싶었다. 아마도 여자는 엄마 옆을 따라 다니며 아편 액을 뿌려댄 것 같다.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지만 셋은 큰 담벼락 밑에 앉았다. 여자는 엄마에게 저 앞에 가서 풀을 뜯어오라고 했다. 몽롱한 상태로 풀을 뜯어왔다. 엄마가 정신이 있나 확인을 해보려고 했던 것이다. 풀을 뜯어 오자 둘은 어디 좀 다녀오겠다며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는 정신이 들 때까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

정신을 차려보니 무릎 위에는 빨간 보자기로 싼 뭉치가 있었다. 가슴 밑에 찬 복대는 생각도 못했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서두르지 않으면 송아지도 염소도 사지 못할 것 같았다. 엄마는 그 빨간 보자기 뭉치를 들고 소시장으로 뛰었다.

소시장에는 함께 갔던 동네 아재가 소 사러온 사람이 어디 갔다가 이제 오냐면서 빨리 소를 고르라고 했다. 맘에 든 송아지를 고르고 흥정을 마친 후에 빨간 보자기를 풀자 거기에는 돈이 아닌 종이 뭉치가 들어 있었다. 그때서야 가슴에 찬 복대가 생각나 가슴 밑을 더듬었다. 복대는 없었다.

하늘이 노랬다 .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 어떤 소인가 . 어떻게 키운 소인가 . 소는 엄마에게 있어서 남편이었다 . 어린 딸의 손에 키워진 소를 판돈이다 . 그랬다 . 나는 소를 키웠다 . 학교에서 돌아오면 소를 몰고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풀을 뜯겼고 , 꼴을 베어 저장해 두었다가 비오는 날이면 먹이곤 했다 . 소는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서 농사일을 도왔다 . 그런 소를 팔았는데 소를 살 수가 없다니 어떻게 집으로 돌아 갈 수 있단 말인가 . 실성한 사람처럼 소시장을 휘청휘청 걸어 다녔다 .

함께 간 아재는 그런 엄마에게 1000 원을 주면서 차타고 집에 빨리 가라고 했다 . 엄마 곁에는 면식이 있는 교회 장로님이 동행을 했다 . 아마 엄마가 나쁜 맘을 먹을까 싶어 아재가 사람을 붙인 것이다 . 장로님은 보성장에서 조성면 시장까지 함께 했다 . 그날이 장날이라 늦게까지 시장에 남아 있는 동네 사람이 엄마를 동행해서 집까지 무사히 왔다 . 엄마는 오랫동안 병이 났다 . 이웃집에서는 며칠 간 죽을 쑤어왔다 .

2 년이 지나고 나는 서울로 올라와 학교를 다녔다 . 그때까지 소는 사지 못했다 . 아니 사지 않았다 . 집에서 키울 사람도 없었다 .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소문에 의하면 , 보성장 그 쓰리꾼은 경찰에 잡혀 죄 값을 치렀고 남자는 이미 죽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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