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규 옹, 거창군수에게 보내는 간곡한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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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규 옹, 거창군수에게 보내는 간곡한 부탁
  • 지리산힐링신문
  • 승인 2020.02.05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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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승대 지킴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선정 유공자

거창은 운무에 싸인 덕유산 자락이 아름답게 바라다보이는 첩첩 산골이다. 그렇지만 들어와 보면 먹을 것도 많고 계곡들의 풍광이 수려해서 선풍(仙風)이 감도는 동네이다. 강선대(降仙臺)가 그렇고 수승대(搜勝臺)의 경치가 일품이다. -조용헌 조선일보 칼럼니스트

 

 

조선 중기 문신 동계 정온(1569~1641) 선생의 생가와 그가 말년에 은거하던 모리재를 이어주는 숲길이다.

동계 선생이 실제로 걷던 길로 추정된다. 숲길은 걷기 편하다. 울창한 소나무 숲이 만들어내는 그늘이 시원하다. 길 따라 수승대·갈계숲·용암정·강선정·만월당 등 볼 것이 널려있고 수승대국민관광지 옆에는 황산전통한옥마을민박촌이 있어 하룻밤 머물며 겨울을 만끽하기 좋다.

-경로: 수승대~정온종택~모리재~강선대~갈계숲~용암정~수승대.

-거리: 14-소요시간 : 4시간 30

-난이도: 보통

-중앙일보 홍지희 기자

 

 

 

 

수승대는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에 위치한 명승지이다. 옛날에는 백제와 신라의 국경에 위치해 신라로 가는 백제 사신들이 수심에 차서 송별하는 곳이어서 수송대로 불렸었다고 한다. 이후 조선시대에 퇴계 이황이 이 곳의 풍경을 예찬하는 시를 읊은 후 수승대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요즘에는 휴양지로서 인기가 많으며, 거창국제연극제 현장으로 그 명성이 높다.

수승대 초입에 유암(裕菴) 신왕용 선생이 쓴 서예 수승대 현판이 붙어져 있다.

그 글씨 속에 조선 선비들의 풍류가 철철 흘러넘친다.

수승대 인근, 황산마을, 수승대 지킴이 정도(正道) 신정규 옹과 함께 수승대 지상여행을 떠나보자.

 

 

 

 

 

 

수승대는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였다네. 수승대는 삼국시대 때 백제와 신라가 대립할 무렵 백제에서 신라로 가는 사신을 전별하던 곳으로 처음에는 돌아오지 못할 것을 근심했다 해서 근심 수(), 보낼 송()자를 써서 수송대(愁送臺)’라 했지. 또 속세의 근심 걱정을 잊을 만큼 승경이 빼어난 곳이란 뜻도 있소. 수송대가 수승대로 고쳐 부르게 된 것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에서부터 비롯되었다네.”

 

 

1543년 퇴계 선생이 마리면 영승리에 왔다가 이름이 아름답지 못하다며 음이 같은 수승대(搜勝臺)’라 고칠 것을 권하는 시를 남겼다.

 

 

 

수승대 중앙에는 거북처럼 생긴 거대한 암석이 있다. 바로 구연암(龜淵岩) 즉 거북바위로, 옆에서 보면 마치 거북이 머리를 내밀고 엎드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거북바위에는 많은 글씨들이 새겨져 있고, 글씨의 대부분은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새긴 것들이다.

신정규 옹의 해설이다.

 

저 바위 에 쓴 글씨 중 걸작이 하나 있다네. 저기 봐라. ‘退溪命名之臺(퇴계명명지대: 퇴계선생이 이름을 지은 대)’라고 적혀 있잖소

 

 

구연암 앞에는 삼각주로 형성된 송림 섬솔이 있다. 이곳은 원래 자갈밭이었는데 조선 중종 때 요수(樂水) 신권(愼權) 선생이 제자들과 함께 이곳에다 흙을 부어 소나무를 심어 가꿨다고 한다.

옛날 신권 선생이 은거하면서 구연서당(龜淵書堂)을 이곳에 건립하고 제자들을 양성했는데, 지금 수승대 안에는 구연서원(龜淵書院)이 있다.

구연서원 남쪽으로는 문루인 관수루(觀水樓)가 있다.

수승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바로 요수정(樂水亭)이다. 이곳은 신권 선생이 제자들과 강학하던 곳으로 경치가 뛰어나다.

1542년 신권 선생이 구연재와 남쪽 척수대 사이 물가에 처음 건립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그 뒤 다시 수재를 만나 1805년 후손들이 수승대 건너편 현 위치에 세운 것이다.현수교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위천을 중심으로 왼편에 요수정, 오른편에 수승대, 그리고 저 멀리 덕유산 자락과 맑은 하늘이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이다.

 

수승대 기행을 마치고 황산마을도 발걸음을 재촉한다. 마을 초입에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팻말이 붙어져 있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마을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추진본부에서 선정하는 것으로 20111116일에 설립 허가된 대한민국 농림수산식품부 소관 사단법인이다.

황산마을은 아름다운마을 7호로 2015년 지정되었다. 지정될 때 신정규 옹의 업적이 높이 평가되어 상을 받았다. 신정규 옹은 거창군 위천면 수승대 일원에서 진행되는 국제연극제 유치에 기여를 했고, 국가명승 53호인 수승대와 이웃한 황산리 고가마을을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7호로 선정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황산마을은 18세기 중엽에 황고(黃皐) 신수이(愼守彛) 선생이 입향하면서 번성한 거창신씨 씨족마을이다. 황산 마을의 생성은 16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조선시대 영조 이후 인물이 연이어 배출되었다고 전해진다. 1540년 요수 신권 선생이 이곳에 은거하며 1540'구연재'

세우고 후학들을 양성했던 이후로 거창 신씨의 집성촌 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이곳 가옥들은 대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건립된 건축물로 대한제국 말기와 일본 강점기 시대의 지방 반가의 정통 한옥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신정규 옹이 들려주는 황산마을 해설. “마을에 들어서면 입구에 높이 15m, 수령 600년에 이르는 '안정좌' 나무라 부르는 느티나무가 자리하고 있지, 바로 저 고목이다.

 

마을 중앙에는 "거창 황산리 신씨고가"가 자리 잡고 있는데, 1927년 옛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지은 건물로 '원학고가'라고도 부른다네. 이 가옥은 경상남도 민속문화재 17호로 지정되어 있다.

안채, 사랑채, 중문채, 곳간채, 솟을대문, 후문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특히 사랑채는 궁궐에서나 볼 수 있는 고급스러운 장식물로 꾸며져 있어 당시 큰 지주였던 집주인의 재력을 엳볼 수 있다네.“

마을의 담장은 제법 큰 자연석을 이용한 토석담으로 약 1.2Km에 걸친 활처럼 휘어진 전통 담장길은 전통고가와 잘 어우러져 매우 고즈넉하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수승대, 황산마을 여행을 마치고 신정규 옹 자택에서 차를 나눴다. 신옹은 기자에게 당부한다.

지면을 통해 나, 민원 하나 부탁하고 싶네, 구인모 거창군수님에게 말일세. 뭐냐? 하면? 구인모 거창군수님의 군정에 대한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소인은 황산마을에 사는 신정규 올씨다. 거창군 집행부에서 남상면 창포원과 가조면 능청다리에 거창군 발전을 위해 노력하시는 데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수승대도 함께 발전시켜줬으면 합니다. 수승대 인근 주민들의 삶이 날로 피폐화되고 있습니다. 수승대에 관광 콘텐츠를 부여, 수승대가 사시사철 붐비게 해주소서. 콘텐츠가 뭐냐?전사청 건물 재보수, 구연서원 마당 잔디밭 조성, 대밭 및 조경식으로 석축쌓기, 솔섬을 솔섬공원으로 조성하고 솔섬가는 능청다리 사업을 추진해주소서. 이를 요수문중에서 건의하는 바입니다.”

향리 황산마을과 수승대를 사랑하는 노인의 간곡한 청이다. 본지는, 노인의 호소문을 실어, 구인모 거창군수에게 띄워 보낸다.

 

조광환 기자 kwa16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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