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함양시장 반찬가게 엄마의 손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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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함양시장 반찬가게 엄마의 손맛
  • 지리산힐링신문
  • 승인 2019.12.22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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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엄마 손맛으로 만든 음식이 최고

 

글/이관일 중앙일보 기자. 미학칼럼니스트

 

 

글 쓰는 사람들의 글 소재 중 하나가 어머니와 음식이야기다. 이런 글들은 모두 다 애틋하고 눈물겹다. 가난했을 때 먹었던 음식들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다. 특히 어머니가 해 준 음식은 정말 영원히 잊지 못하는 추억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진수성찬에 관한 이야기는 없다. 어느 누구도 진수성찬에 대해서는 그리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요즘 사람들은 보릿고개라는 말을 잘 모를 것이다. 보릿고개는 지난 가을에 수확한 양식은 바닥이 나고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은 5~6월(음력 4~5월), 농가생활에 식량사정이 매우 어려운 고비를 말한다.

이 때를 춘궁기(春窮期), 또는 맥령기(麥嶺期)라고도 한다. 최근에는 경제성장과 함께 농가소득도 늘어나 보릿고개라는 말이 사라졌으나, 일제강점기에서는 두말할 나위 없고 광복과 한국전쟁, 그리고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연례행사처럼 찾아들던 우리네 농촌의 일상이었다.

‘진지 잡수셨어요’ ‘식사하셨나요’ 등도 궁핍한 생활이 이어지던 보릿고개를 넘기면서 비롯된 인사말이다. 오죽했으면 지난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허준의 동의보감에도 보릿고개를 넘기는 요령이 기재되었을까.

구황음식(救荒 飮食)도 요즘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가뭄이나 흉년 등으로 식재료가 부족할 때 주식 대용으로 먹는 음식이다. 예를 들면 농작물 대신 먹을 수 있는 야생 식물. 피, 아카시아, 쑥 등이다. 그리고 보릿고개 때에 칡뿌리로 연명하는 사람이 많았고 칡뿌리를 갈아 만든 녹말은 구황식물 가운데서 가장 우수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또한 춘궁기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대표적인 음식은 죽이다. ‘죽을 쑤다’ ‘죽도 밥도 아니다’ ‘변덕이 죽 끓듯 하다’ 등 죽과 관련된 속담이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밥을 짓는 데 필요한 곡식 양의 1/3만으로도 죽 한 그릇을 거뜬히 만들 수 있다. 따라서 보릿고개 때만 되면 산나물이나 시래기 등을 넣은 희멀건 죽이 밥상의 단골 메뉴가 되곤 했다.

'개떡'이라는 떡이 있다. 보릿가루에 쑥을 버무려 넣고 쪄낸 떡인데 모양이 사나워 개떡이라 부르는 것이다. 보릿고개가 찾아올 무렵인 봄철에 덜 익은 보리이삭을 따다가 밭 주변에 많이 돋아난 쑥과 버무려 먹는 떡이 개떡이다. 헐벗었던 날들의 기억이지만 아직도 아련한 향수 때문인지, 먹을거리가 넉넉해진 요즈음도 개떡은 사라지지 않았다.

늘 고단했던 당시 우리네 살림살이가 그런 개떡의 기억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도토리는 구황음식 중에서도 아주 독보적이다. 다른 것들은 풍부한 열량을 주지 못하지만 도토리에는 탄수화물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도토리로 만든 묵은 사람들의 건강에 좋은 음식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는 정말 배가 고파 먹은 음식 중 하나였다.

그리고 경상도 지방의 구황음식으로 ‘갱시기’라는 음식이 있다. 경북 상주가 고향인 소설가 성석제 씨는 '갱시기'에 대해 '식은 밥과 남은 반찬 묵은 김치를 썰어 솥에 대충 붓고 물을 넣어서 끓인 음식이다. 반드시 식은 밥이라야 하고 또 반드시 푹 삭아서 신 김치 남은 반찬이라야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제 맛이 나지 않았다. 기나 긴 겨울밤에 더 이상 나올 음식이 없으니 다시 배가 고파지기 전에 얼른 잠을 자는 게 상책이었다' 라고 그의 글 <갱죽>에서 밝혔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들도 청와대에 들어 왔어도 갱시기를 먹고싶어 했다고 한다.

구황음식이 이제는 황제음식으로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보릿고개 때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먹었던 구황식품들이 요즘은 건강을 지켜주는 ‘황제음식’ 혹은 ‘웰빙음식’으로 우리들 식탁 위에 나온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곤드레나물밥’이다. 곰취 처럼 달콤 쌉싸래한 맛을 내는 곤드레는 강원도 사람들이 즐겨 먹던 구황식품이었는데, 요즘엔 고랭지에만 서식하는 자연산 무공해 식품으로 인기를 끌면서 전국구 음식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고구마도 그렇다. 최고의 항암식품이라는 고구마는 구황식품 중 오늘날 웰빙 슈퍼푸드로 가장 주목 받고 있다.

고구마는 미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 식품으로 선정될 만큼 완벽한 식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 끼 식사로 훌륭할 뿐 아니라 각종 영양 성분이 풍부하고 잎과 줄기까지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는 하도 많아 이 정도로 끝내자.

자~이야기를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자. 배고프고 가난했던 시절 ‘울엄마’가 해준 음식들. 어쩜 그리도 맛있었는지. 울엄마 살아 있으면 아흔이 조금 넘었을 터인데 그런 음식 어디가야 한 번 먹어 볼 수 있을까? 내 나이 칠십. 하늘나라에 가야 울엄마 만나고 음식 먹을 수 있겠지? 그래서 그래서 우리 동네 재래시장 가서 휙 한 번 돌아보면서 울엄마가 만든 음식 같은 것 없나 구경이나 해야겠다.

지리산함양시장 반찬가게 ‘엄마에 손맛(주인:최분옥)’에 가면 열무김치를 구입할 수 있다.

다음은 엄마에 손맛 주인장이 가이드하는 열무김치비빔국수 만드는 법

“양념장재료로는 고춧가루, 설탕, 식초, 매실액, 열무김치국물, 참기름, 부재료로는 소면, 고명 계란, 깻잎, 오이 등이면 됩니다. 비빔국수의 핵심은 새콤달콤이니까 식초를 2스푼 넣어줍니다. 열무가 너무 길어서 국수 먹을 때 좀 불편할 수도 있으니 미리 가위로 좀 잘라주면 좋습니다. 지리산 등반길에서 먹는 열무김치비빔국수, 아주아주 좋은 추억꺼리가 될 거예요.

지리산 함양시장 엄마에 손맛 가게에서 음식에 대한 칼럼을 적어본다.

어머니의 모유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음식이라고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수저를 들고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서부터 음식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된다고 한다. 왜 그럴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완벽한 모유 같은 음식이 아니어서 그렇다고 음식 전문가들은 이야기하고 있다. 아무튼 사람의 식성은 선천적일 수 있지만 전문가들에 의하면 대개 후천적인 영향이 더 크다고 한다. 어릴 때 먹은 음식은 우리 머릿속에 오래 남아 어른이 되어서도 그 맛을 잊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이 어머니의 손맛이다. 우리가 어릴 때 먹은 음식은 거의 100% 어머니가 만들어 준 음식들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어머니의 음식을 오랫동안, 아니 평생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어머니들은 자식들이 자신이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하며, 자신이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고 한다. 우리들이 어릴 때 먹은 음식들의 재료를 보면 그리 뛰어난 것들이 아니었다. 저녁 밥상에 올라오는 반찬들을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간단한 것들이었다. 어쩌다가 할아버지와 저녁을 먹을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올려놓은 것 고등어 한 소반이 특별했다. 어머니는 별 다른 조리법도 쓰지 않고 특별한 비법도 없었지만 언제나 그 맛은 ㅤㅁㅗㅎ았고 어른이 된지금도 무척이나 그리워진다. 그래서 전남 보성 출신의 최선근 시인은 ‘어머니의 손맛’은 이렇게 표현했다.

어머니/ 어머니 손맛이 그립습니다/ 보릿고개 넘어가던 목메인 가난은/ 배고픈 설움에 찬 밥 한 그릇/ 물 말아 김치 한 가닥 걸쳐 먹던/ 어머니 그 손맛이 그립습니다

어머니/ 가난한 옛골 그 손맛 그리워/ 오늘은 산해진미 천하제일 맛집에서/ 아무리 먹고 또 먹어도/ 눈물 젖어 허기진 배를 채워주던/ 감칠맛 나는 그 손맛이 아닙니다

김장도 한 해 농사라고/ 해 저문 냇가에 짚불을 밝히고/ 김장 날은 온 식구 한 자리에 모여 앉아/ 가난도 가난이지만 배고픈 설움이/ 제일 큰 설움이라 달래며/ 물 말아 김치 한가닥 얹저 주시던/ 곰삭은 그날의 음식이 그립습니다

그렇다. 산해진미 천하제일 맛집의 음식도 엄마 손맛보다 못하다. 다들 이렇게 말한다. “나는 우리 엄마 음식이 제일 맛있어”라고. 지금은 더 맛있는 재료, 더 복잡한 조리법을 거친 음식들을 손쉽게 먹을 수 있고, 수많은 요리 프로그램이 입맛을 자극하는 음식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때로는 그 단순하기 그지없는 어머니의 음식 맛은 누가뭐라 해도 천하진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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