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희 시인 에세이 내고향 안의면
상태바
양선희 시인 에세이 내고향 안의면
  • 지리산힐링신문
  • 승인 2020.01.18 20: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떤 지명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 홀로든 더불어서든 가 닿아 탄식이나 탄성, 웃음이나 한숨, 땀이나 눈물,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그 지명에 부려 놓았기 때문일 테다.

그런 사연이 없는데도 그 지명을 떠올리면 슬그머니 웃음이 흐르거나, 가볍게 이마라도 치거나, 가는 길을 그리거나, 낮게 휘파람이라도 불게 되는 것은 자기 생에서 지울 수 없는 존재가 거기에 살았거나 살기 때문일 테다.

그리 그리운 사람이 없는데도 그 지명이 자기 삶의 일부처럼 여겨지는 것은 거기에서 났거나 자랐거나 무덤을 쓰기라도 할 땅이기 때문일 테다. 안의(安義)! 그 곳이 내게는 이 지상에서 가장 특별한 땅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하기 전까지 살았던 데고, 어머니 가묘 곁에 아버지의 봉분이 있는 데고, 도시에서 자식을 거두느라 어머니가 10년을 넘게 방문에 자물쇠만 걸어둔 옛집이 있는 데가 그 곳이기 때문은 아니다.

동결 건조해서 빻은 내 시신을 거름으로 그늘이 넓은 한 그루 나무를 키우고 싶은 곳이기 때문만도 아니다. 방랑자들이 극찬하는 명소에서도 내 고향만은 못해!’라고 못 박을 수 있는 것은, 내 고향이 제 품 곳곳에 헤아리기도 힘든 비경을 감추고 있기도 하려니와 그 풍경들이 제 모습 속에 기껍게 나를 들여 키웠기 때문이다. 내게 밝은 길눈을 선물한 고향은 눈을 감고서도 훤히 지도를 그릴 수 있다.

마당에 날아들던 꿩 울음, 옥수수를 따러 간 밭에서 마주치던 노루의 눈빛, 고사리며 더덕을 얻으러 갔던 산에서 만난 흰 뱀, 익어가는 정도에 따라 다른 오디의 색깔, 방천에 오도마니 앉아 바라보던 목을 한껏 뺀 자라의 표정, 내 손가락을 깨물던 가재의 집, 두 손아귀를 빠져나가던 메기와 뱀장어의 매끄러운 감촉, 달빛이 찰랑대는 물 속에서 멱을 감는 온 동네 여인들

 눈에 선한 그 풍경들 속에 어리거나 큰, 꿈에 부풀었거나 좌절한, 창백하거나 홍조를 띤 지난날 내 모습이 나이를 먹지 않고 남아 흰머리가 생기기 시작하는 나를 가만가만 부른다. 그 곳으로 갈 때는 새로 뚫린 넓고 빠른 길을 못 본 체하고 꼬불꼬불한 국도를 탄다.

서울살이에 지쳐 고향의 정기를 수혈 받고 싶을 때 밤 기차를 타고 가던 때와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길. 시외버스를 타자마자 왁자한 사투리가 어깨를 툭툭 치며 오징어 다리나 찐 달걀 하나라도 건네는 길. 전설이 얽힌 고개며 바위들, 늘 그 자리에서 지었다 피는 이름을 다 아는 꽃들, 주운 보리 이삭을 들고 가 맘껏 복숭아를 따오던 과수원들, 게으름과 부지런함의 차이를 단박에 깨우쳐 주던 들판, 삶과 죽음 그 경계의 두려움을 모르게 하던 놀이터였던 공동묘지의 낮은 봉분들. 모퉁이를 돌 때마다 어떤 풍경이 나를 맞을지 딱딱 알아 맞출 수 있는 길을 놓치지 않고 가면 지리산 동북쪽에 터 잡은 안의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는 도보 여행을 권한다. 정여창 선생과 아리랑 고개, 은신암과 무학대사, 의병장의 갑옷, 황대마을 효성바위 외에도 더 있는 전설이나, 연암 박지원 선생 사적비가 있는 안의 초등학교, 내가 태어난 교북리에 있는 안의 향교, 전통놀이연구가이며 장승제작자인 이철수 선생이 열고 있는 다송헌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차를 타고 지나쳐서는 안 될 곳들이 소설의 복선처럼 숨어 있어 그들을 놓치면 안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계곡이 아름다워 진리삼매경에 빠졌다던 많은 학자들이 머물던 시간을 거닐려면 우선 한 그릇 안의 추어탕으로 기운을 차리는 게 순서일 테다. 추수가 끝난 가을이면 괭이와 세수대야를 들고 무논으로 나가 겨울을 나러 땅 깊이 파고든 미꾸라지를 잡아 추어탕을 끓이곤 했었다. 호박잎으로 미꾸라지들을 문질러 씻어 비린내를 털고 푹 삶아 간 뒤 체에 걸러 얼갈이배추와 향이 독특한 제피 가루를 넣어 먹던 그 맛은, 지금도 당긴다.

 

어느 식당 문을 열어도 그 진미를 느낄 수 있으리라. 누각과 정자의 고장답게 안의 주차장을 나오자마자 눈길을 앗는 것은 광풍루(光風樓)이다. 수양버들이 늘어선 금호강과 느티나무가 울창한 오리숲을 바라보며 서 있는 광풍루의 팔작지붕 아래서는 어린 내가 해마다 가서 넋을 빼던 경연 시조창이 들리는 듯하다. 여기에서 나 있는 길은 많다. 어떤 길을 따라 가면 달을 희롱하는 정자라는 농월정(弄月亭)과 계곡을 덮다시피 한 너럭바위 위로 옥 같은 물이 흐르는 화림골이 나오고, 또 다른 길을 따라 가면 매바위와 심원정과 장수사 일주문이 먼저 자태를 뽐낸 용추폭포가 있는 용춧골이 나온다. 고향에 갈 때면 들러 내 심신을 씻는 이 곳들이 아니라도 안의라는 지명을 지닌 데와 그 이웃에서는 무거운 신을 벗고 편히 마음을 내려놓을 데가 숱하다. 푸른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에 취하기는 마찬가지이니 어느 길로 먼저 갈까 망설일 필요는 없다. 가다 쉬다 틀림없이, 비경을 살짝 내비치는 다른 길의 유혹에도 빠질 테니 말이다. 그런 유혹에 기꺼이 혹해 잠시 발이 묶이는 것이 더 행복한 곳, 거기가 바로 내 고향 안의이다.

 

양선희 시인.

 

 

 

 

 

 

 

 

양선희 시인 약력

 

 

1960년 경남 함양 안의에서 출생,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87년 계간 <문학과비평>일기를 구기다9편을 발표. 시집으로 <일기를 구기다>, <그 인연에 울다>, <노상에서의 휴일><흑석동 환상곡>, <두 여자의 블루스>< 빌어먹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