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영 여행작가의 맛탐험/노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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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여행작가의 맛탐험/노가리
  • 지리산힐링신문
  • 승인 2020.01.16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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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곡순대국밥집 바로 앞에 노가리가 있다

 

 

명태는 국민생선이다. 동해 연안에서 산란해 북태평양, 베링해, 오호츠크해까지 갔다가 동해 연안으로 돌아와 알을 낳는다.

먹는 용도와 방식이 다채로워 생태찌개와 황태북엇국, 동태전은 물론이고, 내장과 알은 젓갈로 만들어 먹고, 꼬리와 지느러미는 국물맛을 내는 데 쓰인다.

명태는 일본과 북한에서도 즐겨 먹는다. 일본에서는 어묵 종류인 가마보코’, ‘멘타이코로 불리는 명란으로 식탁에 오른다. 북한에서는 명태에 무와 좁쌀밥, 양념 등을 넣어 발효시킨 명태식해가 유명하다.







명태'라는 이름이 정해진 과정에 대해서는 마치 만화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조선시대 함경도 도백(道伯)에게 어느 날 맛있는 생선 요리가 올라왔다. 식사를 마친 도백이 관리에게 물었다. "이 생선의 이름이 무엇이냐?". 도무지 생선 이름을 몰랐던 관리가 대답했다. "생선 이름은 알 수 없사오나, 명천(明川) 사는 태() 씨 성 가진 어부가 올린 것입니다."라고. 도백이 말했다. "그럼 앞으로 명태(明太)라고 하라". 도무지 믿기지 않는, 얼마쯤은 터무니없는 이야기지만 <임하필기> 27권 춘명일사(春明逸事)편에 버젓이 적혀 있으니 믿지 않을 도리도 없다.

명태는 북쪽에서 잡힌다고 '북어(北魚)'라고도 불렀는데 실제 북어에 관한 기록은 조선 후기 그중에서도 고종 무렵에 가장 많이 나타난다. 한반도에서는 고종 조 300년 이전부터 먹었다니 명태는 늦어도 17세기 무렵부터 식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임하필기>에는 고종 무렵, "원산 바닷가에 명태 쌓아둔 모습이 한강변에 땔감 쌓아둔 것같이 큰 산 같다"는 기록도 있다. 이미 조선 말기에는 명태를 상당히 널리 그리고 많이 먹었음을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그리 오래되지 않은 생선이지만 명태는 퍽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황태, 북어, 명태, 동태라는 이름 뿐만 아니라 말리는 과정에서 잘못된 것은 '낙태'라고도 부르고 색깔이 검고 맛이 떨어지는 것은 '흑태', 흰 것은 '백태', 노랗게 잘 마른 것은 '황태'라고 부른다. 낚시로 잡은 것은 '낚시태'라 부르며 명태 새끼, 작은 것은 '노가리'고 반쯤 말린 것은 '코다리'. 우리는 명태를 참 다양하게 이름붙이고 다양하게 먹었다. , , 구이로 먹지만 잘 말린 것은 날 것으로도 먹는다. 명란젓, 창난젓에 이어 아가미젓갈도 만든다. 동해안에서는 김장김치 속으로 생태 살을 이용하기도 한다. 명태는 그 이름만큼이나 맛도 퍽 다양하다.

 

 

필자 김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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