地獄에서 등불을 밝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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地獄에서 등불을 밝혀
  • 조 광환 기자
  • 승인 2023.03.13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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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 되면 우리는 만세를 부른다. 정월을 지나고 2월이 되면 온 나라에서 만세를 부를 준비를 한다. 1919.3.1 100년 전의 일이라 확실히는 모르지만 기억이 사라질듯 한 시점에서 목적이 뚜렷한 외적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며 만세삼창을 불러 저항의지를 살렸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남명조식(1502-1572)의 시대에 착취의 종착점이 어디인지도 가늠하기 어려운 왕권의 폭력으로부터 백성들이 스스로를 지켜야하는 백성주도방위전략을 구상한 자유, 평등의 革命思想을 우리는 기념하고 만세삼창을 해야 한다. 1581년의 황해도 봉산에서 궐기한 임꺽정이나 무지막지한 양인의 고통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가 없어서 1586나는 良人이 아니라 賤民이요라고 소송을 제기한 전남나주의 양인 다물사리 할머니나, 경남거창에서 농사를 짓던 농민이 현감의 착취를 견디지 못하여 집을 불태우고 아반도주를 하는 시대에 백성의 고통을 함께한 남명은 성리학의 명분론을 뛰어넘어 백성들에게 세상의 주인임을 가르치는 百姓主導防衛戰略이라는 뚜렷한 목표로 70년간 133명의 지도자를 양성한 것이다. 왕으로써 부국강병이나 국가경영에 대한 개념이 없는 선조왕은 1589<정여립의 모반사건>이라고 하여 진보주의 지도자 1000여명을 죽이고 귀양을 보냄으로써 지식인들이 대거 사라지자 일본은 임진전쟁을 일으켰고 1차전쟁의 결과, 선조가 자기를 업고 한달음에 신의주까지 도망간 사람, 장만리가 누구인지도 몰랐던 조선군의 나약함을 파악한 일본인들이 또다시 전쟁을 일으키니 그것이 바로 식민사관으로 정유재란인 정유전쟁이다. 정유전쟁에서 남원성전투와 황석산성전투의 차이점은 남원성전투는 조선군과 , 시민이 함께 일본군과 싸운 국제전투고 황석산성전투는 일체의 지원이 없는 백성의 전투라는 점이다. 황석산성전투가 일반전투와는 다른 점은 목숨보다도 더 중요한 자유와 평등, 인간의 기본권을 찾는 신분해방 전투였지만 일본군은 쪈의 전쟁으로 직위의 상하를 막론하고 돈을 벌겠다고 코베기에 혈안이 된 전투로 황석산성에 참전한 장수들이 보고한 코베기 숫자는 남원성의 일본군 5만 여명이 벤 코 3726개보다 열배도 더 많은 40,700여개로 황석산상의 백성군 7천명보다 훨씬 더 많아 일본군이 일본군에 의해 코를 베이고 스스로 무너졌다는 증거다.

 

 

 

황석산성 대첩의 연구는 전문사학자도 전술적 소양이 없으면 접근이 불가능하고 地獄에서도 등불을 켜지 않으면 모든 것이 지옥처럼 느껴지는 외로운 전투였다. 20여 년 간 밤잠 안자고 기도하며 노력했다. 처음부터 75,300명의 궤멸을 연구를 하려고 편성한 예산 1억 원을 목적 외로 유용한 사람, 2017년 안의면장과 총무가 <백성의전쟁 황석산성대첩>책을 500권이나 태우고도 반성이 전혀 없는 사람에 대한 자체조사나 징계도 하지 않은 사람, 사건을 담당한 경찰이 정보공개를 제대로 해주지 않아 재판에서 기각을 당하도록 유도한 경찰서, 등 그야 말로 좀비들이 판을 치는 아수라였다. 이들은 황석산성대첩 백성의전쟁 연구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저승사자들이였다. 그들에게 만인이 공감하는 타당한 변명을 듣고 싶다. “옛날에 면장도 알아야 면장을 한다,” 라고 했는데 군수라면 지방의 대통령인데, 면장보다 몰라서 못한다거나 변명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자유와 평등을 요구한 백성의 전쟁을 연구하는데 지원은커녕 엄청난 장애물이 되었다는 것은 함양에 대한 이념적 역사적 무지의 소치다. 조상들의 자유를 향한 끓는 피의 함성! 분노의 역사를 더러운 선거판의 도구로 던질 수도 없고 그렇게 이용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황석산성을 재축성하는 수십억 대공사를 하면서 총안구가 없는 막쌓기로 대군을 궤멸시킨 조상들의 지혜를 심각하게 훼손한 것처럼, 죽음으로써 형성된 피어린 자산적 가치를 손상시키거나 수익창출을 늦어지게 한다면 그 책임은 당연히 군수에게 있다. 남명의 百姓主導防衛戰略은 자유, 평등의 프랑스대혁명(1787-1799) 보다, 비폭력 저항운동으로 인도를 구한 칸트보다 200, 독일의 전략가 Gene Sharp民間主導防衛戰略(Civilian-Based Defense 고려대평화연구소 1985)보다도 400년이나 앞서 조선의 봉건적 왕권의 폭력에 대항하여 비폭력으로 자유 평등을 요구한 위대한 사상이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인간이 자유와 저항의지가 없으면 신에 이를 수 없고 과학자가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운명론자가 되어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라고 했다. 위대한 함양인이 되려면 3.1절행사도 중요하지만 남명의 자유, 만인평등사상으로 서부경남 7개현 7천 여 명이 하나 된 세계 최초 身分解放 思想革命戰爭聖地! 황석산에서 긍지와 자부심 넘친 만세삼창을 가슴이 터지도록 불러라! 내 것은 시시하고 남의 꽁무니만 따라다닌다면 그것은 위대한 함양인의 할 일이 아니다. 일본군의 궤멸에 대한 총독부의 복수! 1914.3.1일 안의군의 파군으로 주인이 없어졌을 뿐이다. 민선 이후 함양군수가 다른 지역 군수의 치적과 비교분석한 자료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군수가 아닌 읍장으로서는 유능하다는 평가는 받을 만하다. 약속이나 한 듯 모든 시설을 한 지역에 집중한 난개발로 상림은 고고함을 잃은 지는 이미 오래전인데 함양군청이 현 위치에서 더 이상 안주하면 농로도, 임도도 없는 면, 리 단위는 더욱 위축되어 인구는 점점 감소될 것이다. 또한 정신문화의 수장으로써 그 임무가 중차대한 문화원장을 함양읍사람으로만 제한하는 조건은 참으로 고약한 봉건적 사고다. 중요한 정신문화를 이렇게 경시함으로써 청정지수 전국 최하위 열등함양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後日 太史氏 長大之 一助, 인류최초의 자유 평등의 남명조식의 身分解放戰爭을 밝히려는 지족당박명부의 예언은 누가 실현할 것인가?

 

2023. 3

황석역사연구소 박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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