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겨울사냥
상태바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겨울사냥
  • 지리산힐링신문
  • 승인 2020.01.05 13: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고|김석종 경향신문 상무이사

 

 

손톱만큼 굵은 눈송이가 펑펑 쏟아지던 겨울. 논과 밭 사이에 납작 엎드린 하얀 초가지붕. 마을과 산과 들판과 길은 하얗게 눈에 덮였다. 밤새 쌓인 소담스런 눈 위로 아침햇살이 쏟아지면 동화 속 같은 순백의 설경이 펼쳐졌다. 눈은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하얀 색깔이었다.눈이 그치면 참새떼가 사립문 울타리와 가을걷이 끝낸 논의 볏가리, 장독대 옆 감나무에 까맣게 몰려들었다. 까치와 콩새도 어지럽게 눈밭을 날아다녔다. 짹짹짹 짹짹짹짹. 시끄러운 참새 소리에 잠을 깬 아이들은 *눈가래와 삽으로 골목길 눈을 치우며 밖으로 나왔다. 겨울방학을 맞아 심심했던 아이들에게 눈이 반가웠던 이유는 참새, 산토끼, *꿩 등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1.참새잡이

참새를 잡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었다. 어린 아이들은 참새를 잡기 위해 *새총을 만들었다. 그러나 고무줄 새총으로 참새를 잡기는 그리 쉽지 않았다. 새총질로 참새를 맞히기 보다는 남의 집 유리창을 깨거나 친구 머리에 상처를 입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삼태미나 지게의 *바지게도 참새를 잡는데 동원됐다. 눈이 쌓여 먹이가 귀해지면 참새들은 안마당까지 날아들어와 왕겨더미나 볏집가리를 헤집어 낟알을 쪼아먹었다. 이곳에 삼태미나 바지게를 세워 조그만 막대기로 괴어놓는다. 삼태미 밑에 쌀 등 곡식을 뿌려놓고 막대기에 새끼줄을 매 방안까지 끌어들였다. 방문을 통해 망을 보다가 참새가 삼태미 밑으로 들어오면 줄을 당겼다. 엎어진 삼태미 속에 갇힌 참새를 잡는 것이다. 그러나 줄을 잡아당기는 시점을 맞추기가 쉽지는 않았다.

'새차기'라는 것도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참새잡이 도구였다. 나뭇가지를 불에 그을려 구부린 뒤 새끼를 얽어 만들었다. 원리는 쥐덫과 비슷했다. 새차기의 고무줄을 팽팽하게 당겨 받침대로 살짝 괴어놓고 벼 낟알을 매달아놓는다. 참새가 낟알을 따먹을 때 받침대가 튕겨지고 참새가 덫에 치도록 되어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참새의 둥지를 덮치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한밤중 플래시를 켜들고 참새사냥에 나서곤 했다. 사다리를 타고 초가집 추녀 끝으로 올라가 구멍마다 손을 넣어 곤히 잠을 자는 참새를 나꿔챘다. 참새의 따스한 온기와 가냘픈 날갯짓이 손바닥에 전달돼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루 저녁이면 추녀 밑에서 참새 10여마리 쯤은 너끈히 잡을 수 있었다.

청년들은 *공기총을 들고 다니며 탱자나무 울타리나 감나무에 앉아있는 참새를 잡았다. 파이프와 고무줄 등을 얼기설기 엮어 총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이렇게 잡은 참새는 털을 뽑고 내장을 버린 다음 장작불 위에 올려 소금을 뿌리면서 구워 먹었다. 아삭아삭 씹히는 참새구이는 고소한 맛이 그만이었다.

 

 

 

 

 

2.토끼몰이

토끼몰이는 눈이 수북이 쌓인 겨울철의 가장 신나는 놀이이자 사냥이었다. 토끼몰이에는 마을의 아이들과 청년들이 모두 동원됐다. 산 중턱에 4050m짜리 긴 그물을 쳤다. 때로는 학교에서 빌려온 배구 네트를 쓰기도 했다. 몽둥이 하나씩을 들고 청년들은 위에서 아이들은 아래에서 산을 에워싼 뒤 일시에 와! 소리를 지르며 토끼를 몰았다. 굴에 숨어있던 잿빛과 흰색 토끼들이 함성에 놀라 튀어나오고 눈밭에 발이 빠져 우왕좌왕하게 된다. 토끼는 뒷다리가 길어 아래쪽으로는 뛸 수가 없었다. 위쪽으로 도망치다가 몽둥이에 맞아 잡히기도 하고 끝까지 도망친 토끼는 그물을 쳐놓고 기다리던 그물패에게 잡혔다.

한번 토끼몰이에 나서면 어렵지 않게 10여마리씩은 잡을 수 있었다. 이 포획물들로 끓인 토끼탕은 대부분 청년과 어른들의 술안주가 되고 아이들 차지는 국물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런 토끼몰이에는 수렵시대같은 원시적인 희열이 있었다.

겨울철 내내 올가미를 놓아 토끼를 잡아 파는 사람들도 있었다. 토끼는 눈 속에서도 다니는 길만 고집하는 특성이 있다. 우리마을의 상열이형은 눈 위에 찍힌 토끼 발자국과 똥으로 길목을 찾아내 올가미를 놓아 토끼를 잘도 잡아왔다. 토끼굴과 오소리굴도 훤히 꿰고 있었다. 청솔가지를 꺾어 불을 때 연기를 굴 속으로 몰아넣으면 질식 직전의 산짐승들이 뛰쳐나왔다. 지금 같으면 '밀렵꾼'으로 처벌을 받겠지만 당시에는 산토끼 오소리가 워낙 많아 문제될 게 없었다. 아이들은 겨우내 토끼털로 만든 귀마개를 하고 다녔다.

3.꿩잡기

꿩은 먹이를 찾아 마을 근처에 자주 나타났다. 도시에서 온 사냥꾼들은 셰퍼드를 끌고다니며 엽총으로 꿩 사냥을 했다. 그러나 마을사람들은 *싸이나를 이용해 꿩을 잡았다. 송곳으로 흰콩의 가운데를 파내고 싸이나를 넣은 다음 양초로 구멍을 막아 밭둑 같은 곳에 뿌려뒀다.

콩을 주워먹은 꿩들은 그 자리에서 푸드득거리며 쓰러져 죽거나 날아가다가 떨어져 죽었다. 꿩은 내장을 버린 뒤 무를 썰어넣고 국을 끓여 먹었다. 닭고기보다 훨씬 담백하고 맛이 있었다. 싸이나로 토끼를 잡을 수도 있었다. 싸이나 넣은 콩을 시래기에 숨긴 뒤 보리싹이 자라는 밭둑에 나뭇가지를 꽂고 걸쳐놓았다. 배고픈 산토끼가 시래기를 뜯다가 독약을 먹게되는 것이다.

이젠 고향에도 할머니 품처럼 포근했던 눈덮인 초가지붕은 남아있지 않다. 산에는 토끼와 꿩이 사라진지 오래 되었다. 아궁이를 지피던 장작불처럼 따스한 정이 넘쳐나던 고향. 추위도 잊은 채 겨울 눈밭을 헤치며 산토끼를 쫓고 플래시 불빛으로 참새를 잡던 어린 날의 그 겨울이 그립다.

김석종 기자sjkim@kyunghyang.com

 

*그시절 이런말 저런말

*눈가래

많은 양의 눈을 치우기 위해 만든 도구. 사각형 판에 긴 나무 자루를 달았다.

*

꿩 중에서도 암컷인 까투리는 볼품도 없고 체구도 작으나, 수꿩인 장끼는 색깔이 화려해 아이들은 깃털을 자랑스레 꼽고 다녔다.

*새총

Y자 모양의 나뭇가지에 노란색 기저귀용 고무줄을 묶고 끝에 가죽을 매달아 만들었다.

*삼태미

삼태기. 새끼, 싸리 등으로 만든 농기구. , 곡식 등을 담아 날랐다.

*바지게

짐을 싣기 위해 지게에 얹는 조개모양의 보조기구. 싸리로 만들었다.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다.

*공기총

압축공기를 이용해 쏘는 총. 요즘 공기총과 달리 압축대를 발로 밟고 총신을 아래 위로 굴러 공기를 압축시켰다. 작은 쇠구슬 탄알을 탄집에 가득넣고 양초로 때워 발사했다. 총알이 넓게 흩어지는 산탄총이어서 참새 등 작은 새를 잡는데 썼다.

*싸이나

청산가리. 푸른 색 독약. 농촌에서는 농약과 마찬가지로 싸이나를 먹고 자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