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남편 심재수 군의원 내조기= 2월 17일밤 기사 올림
취재=이관일 -전 중앙일보출판국기자
거창군 위천면 황산마을 88세 노모 (임재순)가 마당에 나와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었다. 집 뒤쪽 숲 사이로 날아든 햇살이 유리가루처럼 쏟아졌다. 노모는 한손을 뻗쳐 마당에서 무엇인가를 꺾었다. 잡초다.
노모는 그 잡초를 또랑물에 띄운다. 그 풀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잡초는 흘러흘러 또랑 저너머로 흘러간다. 여울진 물살에서 일어난 흰 거품은 햇살을 받아 번쩍 거린다.
임재순 할머니는 1936년 동짓날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에서 태어났다. 은진임씨 갈천 임훈선생의 13대손, 부 임상희 모 정임순 사이 2남3녀중 막내, 19세때 죽헌 조숙 13대손 조병희 (전 위천면장)과 연을 맺어 3남3녀를 낳았다. 임재순 노모는 어젯밤 꿈에 부친을 만났다. 꿈에, 아버지가 산에서 내려오셨다. 아버지는 두 손에 오뉴월 산야에 어우러진 개망초 꽃망울 같은 별을 수북히 들고 계셨다, 그 별을 딸에게 건네주며 한다는 말씀이, “이제 내캉 저 산으로 올라가자”고 하신다. 이 말에 화들짝 놀란 임재순 노모는 가위눌린 듯 한참 꿈속에서 신음소리를 냈다, 그리곤 깨어났다.
“아버지가 왜 나에게 별을 건네주셨을까? 나보고 산에 왜 올라가자고 했을까?
노모는 잠에서 깨어나 마당으로 나와 지금 멍한 표정을 지으며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다. 노모는 한손을 뻗어 마당에서 무엇인가를 꺾었다. 잡초다!
이 잡초를 한참 바라보면서 노모는 지난 세월을 반추한다. 남편을 만나 자식들을 생산하고 아들딸 시집장가 보내고 지금은 어언 88세, 아, 이제 나도 아버지계신 저 피안의 세계로 가야할 때가 되었나보다.
어릴적 내 동무들은 지금 어디 있으며 몇 명이나 살아있을까? 노모는 마당을 나와 어릴적 고향 북상면 갈계리를 향했다. 그곳 노모당을 찾았다. “할매, 황산마을 사는 할매 아잉교? 글쎄, 다 죽고 인자 할마시(임재순)만 남았을 낍니더.”하고 노모당 한 아낙이 말한다.
잠시후 한 여인이 들어온다. “누구싱교?” “응, 황산마을 임재순 할매다, 아낙이 부엌으로 가, 사과 두알을 가져와 깎는다. ”아, 그래요, 제가 할매 동무들 살아있는지 안 살아있는지 한번 수소문 해보케요“하면서 핸드폰을 꺼낸다. 깎은 사과를 임재순 할매에게 전하며 ”아이구 모두 죽고 안계시네?“
핸드폰을 방바닥에 놓으며 여인이 말한다. 북상면 당산마을 전귀민(1961년생)씨다. 전씨는 수심에 찬 임재순 할머니를 위로할 요량으로, 할매 어깨를 주물러준다, 그 두손에 온기 가득하다.“이이고 할무이 얼굴 새하얗고 보얀네요, 우찌 얼굴 색이 잘 익은 복숭아처럼 은빛이 가득한교?” “아이고 무슨 말을 , 쭈구렁 할맨데”
-내일 계속 이어짐
다음호 기사예고편 /거창군 웅양면 할매 시인 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