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보림사에 "일주문을 세우자" 운동전개
상태바
함양 보림사에 "일주문을 세우자" 운동전개
  • 지리산힐링신문
  • 승인 2022.01.27 12: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취재 조광환 기자
보림사 대웅전입니다 

보림사에 일주문을 세우자

 

함양군 함양읍 보림사에 일주문을 세우자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보림사 불자 보련화 보살과 신보선 처사,010-8753-7131.는 "보림사는 함양이 자랑하는 선도량으로서 읍내 불자들의 기도정진도량이다. 이곳에 일주문을 세우고 도량을 일신했으면 좋겠다“(속히 일주문이 세워져) 일주문을 지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이 편안해지고 뜻하는 소원을 이루기 바란다고 말했다.

일주문(一柱門)은 사찰의 산문(山門) 중에 첫 번째 문이다. 일반적인 건물과 달리 기둥을 한 줄로 세워서 일주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일주문의 현판에는 보통 산 이름과 절 이름이 쓰여 있다.

사찰에 찾아가는 경우 절 입구에서 제일 먼저 마주치게 되는 문을 일주문一柱門이라고 한다.

일주문은 사찰의 가장 바깥에서 경계를 표시하는 문으로, 네 개의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일반적인 가옥 형태와는 달리, 두 개 혹은 네 개의 기둥을 일렬로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형식을 갖추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사찰의 규모가 커지고 가람 전체가 건축적 구성이 짜이면서 문의 형태를 띠게 것으로 추정되는 일주문은, 여러 사찰 건축물 가운데 다소 늦은 고려 말기에 이르러 모습을 보이게 되며 조선 중기 이후에 들어서는 대부분의 주요 사찰에 건립되게 된다.

흔히 이 문에 현판을 걸어서 그 사찰의 품위를 나타내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통도사·범어사·해인사의 일주문을 들 수 있다.

통도사의 경우, 문 중앙에 ''영축산 통도사靈鷲山 通度寺''라는 현판을 걸어 사찰의 이름을 밝히고, 좌우 기둥에 ''불지종가佛之宗家''''국지대찰國之大刹''이라는 주련을 걸어 불보사찰佛寶寺刹로서의 절의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일주문은 출입을 위해 있는 기능적인 역할 뿐만 아니라 불과 중생衆生, 극락과 사바의 경계를 이루는 상징적 구조물로, 일주문을 기준으로 해서 승과 속의 경계가 이루어지며 세간과 출세간, 생사윤회의 중생계와 열반적정의 불국토가 나누어진다.

이런 의미에서 일주문은 화엄경일심사상一心思想’, 법화경회삼귀일會三歸一사상의 표출로 볼 수 있다.

,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는 것이다.

문화재청에서는 범어사 조계문(보물 제1461), 선암사 일주문(전남유형문화재 제96), 쌍계사 일주문(경남유형문화재 제86) 등 그 보존 가치가 큰 일주문들에 대하여 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단신

 

서춘수함양군수와 보림사주지스님 

불기 2564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함양지역 사찰에서 인재육성을 위한 장학금 기탁이 줄을 이었다. 함양군에 따르면 올해 봉축행사는 코로나19 위기 상황에 국민과 함께 아픔을 치유하고 극복하고자 부처님 오신 날 법요식을 한 달 미뤄 지난 30일 함양지역 각 사찰에서도 봉축법요식 등 다양한 행사가 마련된 가운데 함양읍 보림사와 금선사, 마천면 안국사에서 지역인재 양성을 위한 장학금 200만 원을 각각 (사)함양군장학회에 기탁하며 나눔과 자비의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했다. 이날 장학금을 기탁하며 주지스님들은 "불기 2564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함양군의 인재들을 위해 장학금을 전달하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기사입니다

 

 

특별부록 

 

함양군에도 미륵불이 존재한다. 함양읍내 보림사 미륵전에 용산사지석조여래입상(咸陽龍山寺址石造如來立像)이 바로 그것이다.

 

보림사 미륵전

 

미륵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의 미륵은 다음과 같다. 미륵은 보살의 몸으로 도솔천(兜率天)에서 머물다가 미래에 석가모니불에 이어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래의 부처를 말한다. 대승 불교의 대표적 보살 가운데 하나이다. 미륵은 사랑과 자비의 부처로 자씨불(慈氏佛)이라고도 한다. 미륵은 도솔천에 살며, 석가모니가 입멸(入滅)한 지 567천만 년 뒤에 세상에 나타난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도탄의 삶을 살아왔던 우리나라 민중들은, 미륵이 출현, 자신들을 구제해주길 바라고 바랬다. 오랜 시간 우리나라 미륵신앙을 연구한 독일 민속학자 요헨 힐트만 교수의 말이다. “조선민중들은 미륵하생신앙(彌勒下生信仰)에 깊이 천착했었습니다. 당시 나라꼴이 엉망이라, 나라님은 민중들을 수탈하고, 외세는 틈만 나면 조선을 침입, 온 국토를 황폐화시켰으니 민중들의 삶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구세주가 왕림하셔서 나라를 일대변혁시켜주길 학수고대했는데 그 구세주가 바로 미륵이었습니다

김지하, 황석영 작가가 쓴 민중문학작품 속에 미륵이 등장한다. 김지하는 저서 사상기행을 통해 미륵을 이렇게 정의한다.

미륵은 가득찰 미() 짤 륵()으로 구성되어 있어. 미는 천지조화요, 하늘과 땅에 도가 가득 차 있다는 거야. 륵은 굴레를 짜라, 소에 굴레를 씌우면 한데 다 먹어가니까, 륵은 우주세계를 하나로 묶어서 오순도순 잘 살아라 그런 뜻이여. 미륵님 세상이 오면 민중들이 묶어서 잘 살아라 그 뜻이야

황석영의 대하소설 장길산을 통해 조선시대 민초들은 미륵의 가피를 받아 민중혁명을 꾀하려 대목을 그리고 있다.

그들은 협곡 소에 숨어살면서 미륵님의 계시를 들었다. 이 골짜기 안에 천불천탑을 하룻밤에 세우면 수도가 옮겨온다는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천민이여 모여라 모여서 천불천탑을 세우자!”

함양군에도 미륵불이 존재한다. 함양읍내 보림사 미륵전에 용산사지석조여래입상(咸陽龍山寺址石造如來立像)이 바로 그것이다.

본래 용산사 절터 근처에 한 민가에 있었는데 1990년 보림사로 옮겨왔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8. 용산사지석조여래입상이 보림사에 봉안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한다. 20105월에 취재한 내용이다.

스님을 친견, 보림사 용산사지석조여래입상의 영험사례를 물었다.

. 그 미륵불(咸陽龍山寺址石造如來立像), 백분애 할매가 우리 절에 공양을 했습니다. 할매(85) 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할매하고 미륵불하고 애틋한 사연이 있습디다, 할매 한테 직접 그 사연을 한번 들어보시구려

백분애 할머니를 만났다. “, 지금으로부터 약 60년 전에, 내가 성심병원 길 건너 함양중학교 가는 길목. 초가집으로 이사를 왔다네. 이사를 오봉께. 초가집 마당에 남산만한 돌덩이가 하나 있더구먼. 그 바위를 치울라 캐도 워낙 돌덩이가 큰 지라 치울 엄두를 못 내겠더라. 그래서 그냥 그대로 놔뒀어(방치). 함양 노인들이 새댁이 살고 있는 집은 옛날 용산사 절터 였소라 카더구먼. 그래서 불상이 있었등 거라. 어느 날 아마 동지(冬至) 지나선 갑다. 우리 집 갓난 애(임명옥) 눈까리를 보니까 글쎄 눈을 안 뜨는 거라. 내일이면 뜨겠지 그냥 놔두었더니 그 다음날도 눈 안 뜨고, 울지도 않고, 눈을 보니 눈꼽도 안 끼고 영락없는 봉사 잉기라. 그때 동네 할매가 우리 어린 아기를 지켜보고 우짜겠노! 내가 보이 마. 아기 몸에 귀신이 들어온 것 같다. 내가 용한 점사 소개시켜 주쿠마. 그 점사, 귀신 잘 쫓아내기로 소문난 사람잉께로 그 곳에 한번 가 봐라. 해서 그 점사를 찾았지. 그 점사, 아기 얼굴을 한참동안 쳐다보다가 까날라 조모님 존함이 뭔교? 내가 이름 석 자를 불러 줬지. 점사는 조모를 초혼강신(招魂降神)하는데. 한참 후 후유? 한숨을 내쉬더니만 조모 목소리를 내는 거라. 네 이 못된 것들. 집에 존귀하신 미륵부처님이 계신데. 집구석에 그래. 걸레 조각 한 장 없단 말이냐? 에이 구정물에 얼굴 쳐 박아 죽을 것들아. 부처님 몸에 새똥이 붙어 있어도 어찌 나 몰라라 그러느냐?

잠시 후 할머니 혼이 빠져나갔는지 점사가 후유? 한숨을 또 내쉬며 나보고 하는 말이 조모께서 하신 말 들었지요? 그래서 내가 연신 합장하며 예 예 알아듣고 말고요. 점사가 부적 두 장을 그려주더구먼. 부적을 주며 이런 설명을 하더라고. 알라(아기)가 눈을 못 뜨는 것은 다름 아니라 새댁한테 삼재가 들어 와 그런거라. 새댁, 이건 삼재를 막기 위해 만든 부적이라네.

(삼재란 불길한 운성(隕星)의 하나로 사람이 출생하여 9년마다 든다고 하며. 삼재가 드는 첫 해를 들삼재. 2년째를 묵삼재. 3년째를 날삼재라 한다)

이 부적을 알라 대갈빡(머리)에 붙여놓고 또 한 장은 집에 계신 미륵부처 머리에 붙어 놓으소. 부적을 보니까 삼두매(三頭鷹)가 그려져 있더구먼. (그 부적엔 神鷹化蔿三頭出南海中三災消滅逐鬼符/신응화위삼두출남해중삼재소멸축귀부라는 한자가 적혀 있었다. 삼두매는 머리가 3개 달린 매를 말한다. 이 매는 용맹스런 새로 역신을 퇴치한다)

 

점사가 준 부적을 알라 머리빡에 부처님 머리 위에 붙어놓고 장에 가 나물 사 와서 정성껏 나물 무치고 새 밥 짓고 정한수 준비해 부처님 전에 올렸더니만 아이고. 거짓말처럼 우리 아기가 눈을 쓱 뜨는 거라. 우리 시어무이캉 나는 이 희귀한 장면을 지켜보고선 두 손이 닳듯 부처님한테 안 빌었나. “부처님 미륵 부처님 인자마 우리 집에 절대 우환이 없게 해주시옵서

우리 집 마당에 있는 부처님을 사람들은 미륵부처님(함양용산사지석조여래입상)이라카데. 미륵이 뭐꼬?”

필자가 답했다. “미륵보살(彌勒菩薩)이라 하지요. 불교에서 말하길 다음 세상에 나타날 것으로 믿는 부처이지요

우짜든동 나는 점사가 시킨대로 아침마다 깨끗한 물 떠서 부처님 몸을 정성껏 닦아주며 우리 집에 화근이 없게 해주시옵소서 발원하고 기도했지.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아마 88 올림픽 때였을 거라. 우리 집 미륵보살이 영험하다는 소문을 듣고 조선팔도 허깨비 브로커 놈들이 이 보살 팔아라 하며 우리 집 앞에 장사진을 친기라. 충북 청원 산다는 채가란 놈은 아예. 함양에 여관방 잡아 놓고 허구헌날 찾아와 제발 미륵부처 팔아라 해싸면서 지랄발광 부리는 기라내가 물었지. 당최 이 부처 가져가서 뭐 할라고 그라요? . 모 재벌 정원에 모셔놓기 위해서 입니다. 에이라 썩어 문드러질 호랑말코 같으니라구. 내가 연탄집게 팍 던지며 이 못된 천하 망조야. 이 신성한 부처님을 그래. 부잣집 정원에 어쩌고 저째 다시는 내 집 앞에 얼씬거리지 마라고 고함을 쳐댔지. 이 사람말고 많은 사람이 이 부처를 탐내 함양 땅에서 오래간 죽쳤지. 그러다 우리 집이 도시계획에 의해 헐리게 되었지. 부처님을 어디다 모셔야 하나? 고민고민 하다가 함양읍 상동 보림사에 모시기로 했지. 보림사와 특별한 인연은 없어. 아무래도 내가 늘그막에 거동도 못할 거고 해서 내 집 가까이 있는 보림사에 모셔 놔야 내가 자주 그곳에 가 기도할 거 아이가. 그래서 보림사에 모셨지

 

사진촬영시간 1월 27일 오전 7시30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