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창 이영기 時調唱 高手되어 돌아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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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창 이영기 時調唱 高手되어 돌아왔네
  • 지리산힐링신문
  • 승인 2021.11.21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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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조광환기자
이영기 010-2778-0443

초대 대통령을 지낸, 이승만은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으나 생의 후반은 비극적이었다. 85세 고령 나이에 대통령직을 수행한 영예도 잠시, 불행스런 하야와 아들 강석의 자살은 노인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이른바 4·19혁명에 의해 권좌에서 물러나,이국땅 하와이로 떠나게 된다.
측근의 전언에 따르면, “하와이로 옮겨가서 보낸 이 대통령의 마지막 몇 년은 비교적 평화로왔다.” 대통령 내외는 하와이에서 요양지의 보통 노부부로 평범하게 시간을 보냈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후일 “그때 나는 이런 생활이나마 허락해준 하나님께 늘 감사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하루 종일 쉴새 없이 집안 일을 했고, 대통령은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대통령은 마당에 나가 화초에 물을 주기도 하고 나무 손질을 하면서 시름을 달랬다.
하와이 체류가 오래되면서 이 대통령은 방문객들에게 자신의 심정을 밝혔다.
“포겟 엔드 포기브(Forget & Forgive : 모든 것을 잊고 용서한다)”.
그것으로 모든 번뇌와 미망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있었다.
대통령은 별세직전까지 고매한 품격을 잃지 않았다. 한시를 짓기도 하고, 시를 읊조리기도 했으며 시조창으로 정몽주(단심가) 같은 옛 선비들의 시를 음송하기도 했다.
“이 몸이 주거주거 일백번고쳐주거 白骨이 塵土되여 넉시라도 잇고 업고 님 향한 一片丹心이야 가쉴 줄이 이시랴”



시조(時調)는 고려 중엽에 발생한 한국 전통 시 양식의 하나이며, 조선 시대에 유행한 시가 양식이다.
시조는 형태적 특성에 따라 몇 갈래로 나뉘는데 이중 평시조는 초장, 중장, 종장으로 구성되는 3장과, 하나의 장에 2개의 구로 구성되는 6구와 한국어의 특징인 끊어 읽기 단위인 12번의 음보로 구성되는 틀을 지닌 정형시이다.
그 밖에는 형식적 특징으로 구별되는 엇시조, 사설시조 등이 있다.
11월 20일 아침, (필자의) 위천초등학교 동창 이영기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왔다. 그는 20대초반 고향을 떠나 저멀리 바다마을 통영시에서 산다.
“오늘 점심때 같이 점심식사같이 하자. 수승대 초입에 오리불고기 잘하는 집이 있다. 고기서 만나자”
이영기는 1960년생으로, 위천초, 위천중, 거창상고, 방통대농학과를 나왔다. 위천면 강천리 동계고택 옆에서 태어났다. 부친 존함은 합천이씨 차개, 모친은 박을남, 영기는 슬하에 2남2녀 중 장남이다. 초등학교 다닐 적에 지금은 산문에 들어간 능해스님(전 진제종정 시봉승)과 잘 어울려 다녔다.
점심약속장소에 갔더니, 오리불고기가 잘 익고 있었다. “우짠 일이고?”
“요새는, 주말마다 (고향에) 안 오나. 어무이 세상버리고나서부터 자주 고향에 온다, 그건그렇고, 니 인터넷신문(지리산힐링신문) 자주 본다, (위천초동창)임종문 소식 등, 그걸 보면서 아스라이 지난날 우리 꼬마시절 회상한다 아이가. 니 인터넷신문 재밌는 기사 만터라,
니가 우리 동창들을 위해 종군기자 역할 하는기 보기가 참좋아, 오늘 내가 니 한테 한턱 쏠라고 불렀다 아이가“
“그래, 니 요새 모하고 사노?“
“내, 모하고 사는지 모르나? 한 40년간 통영바닷가에서 전기공사하고 안 사나”
우리는 오리고기 한 점에, 소맥 한 잔 마시며 지난날 위천초등학교 시절을 이야기했다.
맛나게 점심에 소주 까지 한잔하고 우리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영기모친댁으로 갔다.
가는 길에 동계정온고택이 보였다. 노상 보는 고옥이지만 실로 고색창연하다! 영기 모친댁에 당도했다.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이건만 정갈하기 그지없다.
아마 영기가 주말마다 이 곳에 와, 청소를 하나 보다. 응접실에 들어서니 벽에 부모님 젊었을 때, 노년시절 사진이 걸려져 있다.
그 사진을 보자하니 옛시절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초등학교 댕길때 (내가-필자) 너그 집에 놀로 가면 너그 어무이가 삶은 고구마 꺼내주면서 마이 묵어라 그랬다”
“아 그랬나?”
응접실 탁자 위에 “석암 시조창 교본”이 있다. 석암(石菴 鄭坰兌)이라? 그는 우리나라 시조창의 대가가 아닌가? 중요무형문화재 제41호 「가사」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니 시조창 배우나?” “허허 그냥 취미 삼아, 쪼깨이 배우고 있다”
모친 벽에 걸려 있는 상장들을 보니 조깨이 배우고 있는 기 아니었다. 이영기는 각종 시조창대회에 참가, 그랑프리를 석권한 시조창 프로였다. 동곡 이병도, 향산 강재일 선생으로부터 사사한 그는, 산청군 남명선비문화축제 시조창 부문 최우수상을 비롯 진주개천예술제, 포은 정몽주 선생 송축 전국시조경창대회에 출전,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아이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 일마가 시조창의 장사익이 되고 말았구나!
“영기야 니 오늘, (인터넷지면을 통해) 우리 동창들에게 시조창 한수 노래해바라”
“시조창 할라몬 장구 북이 있어야 노래가 나온다카이, 없어도 한본 해보카?”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戍樓)에 혼자 앉아
큰 칼을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笳)는 남의 애를 끊나니.

어구를 풀이하면 수루(戍樓)는 변방의 오랑캐를 감시하는 높은 망루. 일성호가(一聲胡笳)는 한 곡조의 호가 소리, 호가(胡笳)는 갈대잎을 말아 만든 피리로 소리가 매우 처량함을 뜻한다.
영기가 시조의 매력을 이야기한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시조의 멋과 맛에 취하게 된다. 비록 문학에 관심이 없거나, 시가 무어냐며 대수롭지 않게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렇다.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오거나 들려오는 시조 가락에 자신도 모르게 흠뻑 취하게 되는 것이 바로 시조의 매력이다. 그러니 우리 겨레의 유전자에는 시조의 리듬감이 생태적으로 들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 시조는 친근하고 고유한 운문문학의 정수다.
더구나 시조에 얽힌 역사적 맥락이나, 시조의 뒤안길에 맺힌 일화라도 접한 사람이라면 시조가 문학 이전에 역사를 반증하는 산물이며, 고사를 들려주는 이야기꾼의 역할도 서슴지 않는다. 이게 바로 시조의 매력이다. 이를테면 이방원이 정몽주를 청한 자리에서 몇 차례 술잔이 오간 뒤, “제가 시를 한 수 읊을 테니 답가를 해 주시겠습니까?”라며, 시조를 읊었다. 그러자 이 시를 들은 정몽주 역시 를 불러 자신의 단호한 충정을 전한다. 죽어서도 불사이군[不事二君-두 임금을 섬기지 않음]하겠다며, 고려에 대한 충심을 드러냈다. (하략)
아래 사진 다음 기사이어짐
국내 시조창최고봉 석암선생의 시조교본을 놓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영기는 주말마다 고향, 위천면에 오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판소리 할 때 독공이라는 기 있다. 독공 연마 할라꼬, 주말마다 수승대 깊은 계곡에 간다‘ 

독공(獨功)이란문자 그대로의 뜻은 혼자 일한다는 것이나 판소리계에서는 스승이 필요치 않을만큼 가량을 갖춘 소리꾼이 더 좋은 소리를 얻기 위해 산사 등에서 사람들과 떨어져 홀로 피나는 연습을 하는 것을 이른다. 독공의 방법은 사람을 따라 각양각색이다. 명창 박동진옹의 경우 30대 독공시절 하루 18시간씩 연습을 하며 인분물로 부은 목을 가라앉힌 것으로 유명하다

조선후기 판소리 명창으로 동편제의 시조 송흥록은 득음(得音)을 위해 지리산에서 피나는 소리공부를 했다. 폭포소리를 이겨내는 공부였다목에서 피를 토하며 독공에 매진, 3년 만에 그의 소리는 폭포소리를 뚫을 수 있었다. 그는 귀곡성을 내기 위해 공동묘지에서 몇 달씩 머물기도 했다. 득음을 향한 명창들의 염원은 이처럼 치열했다. 득음을 위해 약을 써서 송화의 눈을 멀게 한다는 영화 서편제는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 바 있다.

영기 니 이야기 들어보니, 영기 니, 보통 아니구나? 니 안 있나? 그 시조 말이다, 우리 거창에 보급해바라, 고향문화발전을 위해 딱이다! 그라고 지리산힐링신문에 시조교실 연재를 하자. 시조의 깊은 매력을 독자들에게 전해주자!”

오랜만에 만난 초등학교 친구캉 시조와 관련된 이야기를 도란도란하자니, 시간이 파파팍 흘렀다. 끝으로 영기는 말한다.

시조는 배울수록 시조창을 할수록 마음이 즐겁더라. 요즘 나는 시조창고수들이 부르는 우조 지름시조를 배우고 있다. 우조 지름시조는 안 있나. 계면조에 의한 지름시조에 평조의 우조가락을 섞어 부르는, 서울 유각골의 가객들 사이에서 널리 불리워진 노래이다.

내가 지금 배우는 우조지름시조는 중국 최호의 황학루이다. 황학루는 악양루, 등왕각과 더불어 중국의 강남 3대 누각의 하나이다.

황학루는 중국 호북성 무한시 황학산에 위치해 있다.

이백이 당나라 현종에 버림 받고 유랑하다 황학루를 찾았다. 여기에서 최호의 등황학루시를 보고 이백은 더 이상 시를 지을 수가 없었다.

무슨 말로 황학루의 아름다움을 이야기 하겠느냐며 한탄하고는 그 자리에서 붓을 던지고는 금릉으로 돌아갔다. 그만큼 최호의 시가 뛰어났다는 말이다.

최호의 등황학루시와 관련된 야사가 있다.

과거 시험을 준비하던 어떤 젊은 선비가 신씨 주점을 찾았다. 늘 외상이었다. 어느날 가난한 그 선비는 고마운 표시로 벽에다 황학을 그려 놓고 떠났다.

그 후 손님들이 술을 마시고 노래 부를 때마다 벽에서 황학이 나와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금새 소문이 퍼져 주점은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이내 신씨 주막집은 큰 부자가 되었다.

몇 년 후 선비가 돌아와 피리를 불렀는데 벽에 있던 황학이 나와 그 피리 소리에 맞춰 또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 선비는 황학을 타고 홀연이 하늘로 올라갔다. 주막집 주인은 고마운 선비를 기리기 위해 그 자리에 누각을 세웠는데 그것이 황학루였다는 것이다.

대단하제? , 이 시조창 잘 배워 위천초등학교 동창회 할 때 한번 불러볼끼다 으하하하

 

이미 옛 사람은 황학을 타고 가 버렸는데

이 땅엔 부질없이 황학루만 남았구나  

한번 떠난 황학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고

무심한 흰 구름만 천년을 유유이 떠도는구나

맑게 갠 강가로 한양 땅 가로수가 역역히 보이고

앵무주에는 이곳 저곳 잡초들만 무성하구나

날은 저무는데 내 고향은 어디쯤인가

물안개 자욱한 강 나그네의 수심만 깊어지네

昔人已乘黃鶴去

此地空餘黃鶴樓.

黃鶴一去不復返

白雲千載空悠悠.

晴川歷歷漢陽樹

芳草萋萋鸚鵡州.

日暮鄕關何處是

煙波江上使人愁.

-최호의황학루

내가, 부모님사랑을 시조로  적어봤다.이 시조를 (수승대에서) 창으로 불러볼키다. 다음호에 소개합니다                      

 

통영에서의 신혼생활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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