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장 이색인물, 외팔이 농사꾼 박덕조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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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장 이색인물, 외팔이 농사꾼 박덕조 여사
  • 지리산힐링신문
  • 승인 2019.12.27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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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오면


반팔 옷 입어보는 게 내 평생소원입니다”

 

 

 

 

 

# 1970년 경술년(庚戌年) 새해가 밝았다. 여기는 함양군 함양읍내 방앗간.

수십명의 읍내 사람들이 구정을 쇠기 위해 쌀, 찹쌀을 머리에 이고 방앗간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털 털 털.

천정에 매달려 있는 구동바퀴가 나락 찧는 정미기계를 힘차게 돌리고 있다.

열 살 남짓된 계집아이 머리 위로 8자모양으로 넓직한 피대(벨트)가 돌아가고 있다. 계집아이이름은 박덕조. 덕조 소녀가 기계 속에서 빠져나오는 떡가래를 한 쪽에 탑처럼 쌓는다. “아이고 덕조 저 놈우 가스나 심()도 세네, 일 참 잘한다, 고만 쉬었다가 해라

소녀 얼굴에 땀방울이 흥건하다. 소녀는 아입니더, () 하나도 안 듭니다, 제 참 일 잘하지예?” “오야오야(오냐오냐) 저금마(저희 어머니) 병 치료비 벌라꼬 지 동생들 밥해 믹일라꼬 저 꼬멩이가 저리 고생이다

소녀는 새벽부터 방앗간 허드렛 일을 하느라 녹초가 됐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같다, 그러나 소녀는 이를 악 물고 떡가래 손질을 해댔다. 피로에 젖은 소녀의 눈이 감겼다 떠졌다 하는데 방앗간 여기저기서 혼비백산. “아이고 우짜면 좋노, 아이고, 덕조 저 가스나 팔이 잘렸ㅤㅃㅜㅆ! 아이고 불쌍해라 저그 어무이 저그 동생 믹이살릴라꼬 하다가 팔 하나를 잃어버리고 말았네

이틀후 읍내 노 의원(醫院). 소녀가 눈을 떴다. 팔 하나가 없다. 소녀가 괴성을 질렀다. “내 팔, 내 팔, 내 팔 오데 갔노!”

# 2015517. 함양군 함양읍 백천리(백철리들) 들녘.

59세의 한 중년 여인이 고추밭에서 전지작업을 하고 있다. 팔 하나가 없다.

내가 고추밭을 향해 고함을 쳤다.

덕조 아지매요, 장애인 신문 미디어힐링에서 취재 하로 왔소!”

뭐라꼬? 나를 으하하하, 이렇게 갑자기 쳐들어오몬 우짜요, 얼굴에 분도 좀 바르고 취재를 해야제, 명색이 내가 그래도 여잔데? (잠시후) 무엇이든지 물어보소, 내 인생 스토리를 신문에 내몬 많은 장애인들이 용기를 얻을 것잉께! 내가 그라니까 말이요

박덕조 아줌마는 1956년 함양군 함양읍 관변에서 태어났다. 홀어머니 슬하 5녀중 3. 위로 두 언니는 대구로 공장일 나갔고 어머니는 읍내에서 품을 팔아 생활을 영위해 나갔다. 허기를 잠으로 때울만치 가난했었다. 엄마가 품팔이 나가면 소녀는 어린 동생들 먹을거리를 구하느라 소낙비 뒤에 여울가에 떠내려오는 과일 껍질에서부터 남의 집 논밭에 들어가 개구리 메뚜기를 잡았다. 하루는 읍내 방앗간을 기웃거렸다. 방앗간 주인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허드렛일을 했다. 주인이 불쌍해 떡가래 몇조각을 쥐어줬다.

저 방앗간에서 일 좀 하몬 안됩니꺼, 집에 동생들이 배를 쫄쫄 굶고 있어예

주인은 안스러워, 그럼, 그렇게 해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방앗간 일을 하다가 벨트에 팔을 집어넣는 바람에 팔이 잘리고 말았다.

몇번이나 자살을 하려고 창산까리 농약을 묵었지예, 내 목숨이 질긴지 허허 명이 안 끊깁디다.”

박덕조 아줌마가 이마로 흘러내리는 땀을 손으로 씻어 뿌리며 계속 이야기 한다.

상년의 팔자, 내가 어릴 적 당한 서름 그 누가 알겠소, 동네에서는 병신이라고 따돌립디다. 내 양볼따구니로 흘러내린 눈물만 해도 낙동강물보다 더 많았을 끼요. 세월이 흘러 내 나이 열여덟, 동네 친지가 중매를 서 벙어리 총각과 백년가약을 맺었지요. 이름은 송준창. 허허 글쎄, 이 양반집은 우리 보다 더 못 살아. 신랑은 끼닛거리를 구하려고 이틀돌이로 노가다를 했는데, 노가다 해서 돈 몇 푼 벌어오면 꼭 자기 어무이한테 갖다 바치는 거라, 효자 효자 그런 효자가 없습디다. 효자면 뭐하요, 시어머니한테 돈이 들어가면 우리한테 한 푼도 안 들어와! 환장하겠더구먼, 내 새끼 분유도 사 믹이고 그래야 쓰는데 (시어머니가) 나한테는 한 푼도 안 주능거라. 시어미한테 대 들 수 도 없고. 할 수 없이 남의 밭에 가 배추, 고추, 무 같은 걸 빌려다가 읍내 장터에 가서 팔았지, 내가 워낙 억척 성질이라 읍내 장터에서 채소를 제일 많이 팔았소, 물론 내가 팔 병신인지라 읍내사람들 동정심도 발동해서 내 채소를 많이 팔아준 것도 있었겠지요. 내친김에 새끼 둘 업고 읍내 길거리에서 풀빵장사도 했지. 지금도 참 고마운 것이, 읍내 사람들이요, 애새끼 둘 리어커에 얹혀놓고 팔 없는 여자가 만든 풀빵이 뭐가 그리 맛 있겠소? 불쌍한 이 여편내하고 애새끼 위한답시고 풀빵을 사줬던 함양읍내 사람들 참 고맙습니다라고 대문짝만하게 신문에 내소!”

 

 

 

취재를 하다가 나는 그만 울어버렸다

 

# 저만치서 남편 송준창 씨가 아내 쪽으로 다가온다. () 상을 한 얼굴이다. 착하디 착한 인상이다.

우리 서방, 진짜진짜 효자입니다. 저런 효자가 없습니다. 늙은 저그 어무이 머리를 안 감겨주나, 따신 물 받아 발을 안 씻어주나? 본 받을 점, 참 많습니다. 우찌 신()이 저런 효자에게 형벌을 내려 말을 못하게 했는지.

젊었을 때는 저그 어무이가 장에 갔다 밤늦게 안 돌아오면 안 있소. 동구밖 길샅을 한참이나 지켜보면서 저그 어뮈가 나타나길 기다리곤 했심더.

우리 서방 워낙 심성이 착해 나, 우리 서방한테 원망 하나도 없소, 저나 나나 병신인지라 서로 의지하며 한평생 오순도순 산 인생이오.”

송준창 박덕조 고추밭 한켠에 트럭터 삽 쟁기 이앙기 각종 농기구가 즐비하다. 고추만 1만여평을 경작한다. 함양농협에서는 이들 부부 양파를 제일로 쳐준다.

-자식농사도 잘 지었다면서요?

잘 지었죠. 허허, 큰 애 이름은 경화, 거창대학 나와 진주서 근무하고 작은 놈은 혜근이 부산대 나왔소!”

-자식농사 잘 지었겠다 앙파 고추 몇 만평 짓겠다 부러울 게 없는 인생이군요. 그래도 가슴 속 깊이 숨겨둔 소망같은 게 있을텐데?

소망이라? 보소 김 의장님(필자) 나 비록 허름한 몸베 바지 입고 흙먼지 마셔가며 양파 뽑는 시골촌부지만 그래도 여자는 여자요!”

-허허 누가 여자 아니라고 했습니까?

내 인생 딱하나 소원이 있습니다. 매미 울어대는 한 여름날에 안 있소, 에쁜 양산 쓰고 함양 상림공원 산책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알록달록 예쁜 반팔 옷 입고요. 그렇게 산책 한번 해보고 싶은 게 내 진짜진짜 소원입니다.”

 

박덕조 여사의 이 말에 나는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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